컴퓨터는 최초에 ‘연산기계’로 태어난 뒤 인간의 두뇌를 대체할 ‘인공지능’으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회로의 집적도와 연산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서도 컴퓨터가 생물학적 두뇌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따라오지는 못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미래 디지털기술이 생명의 특성들을 모방함으로써 기존의 모든 차원을 뛰어넘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예를 들어 생물처럼 번식하고 다양하게 ‘개체변이’ 하는 소프트웨어를 상상할 수 있다.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경우 생존하고 후손을 남기며, 실패할 경우 도태되도록 함으로써 소프트웨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체적으로 진화하는 소프트웨어 또는 회로는 이미 실험단계를 뛰어넘어 실용단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런 회로는 온오프 버튼으로 작동하는 디지털적 특성을 뛰어넘어 때로 연속된 값을 취하는 ‘아날로그형’ 생물체처럼 동작한다.
디지털 공학은 곤충계와 식물계에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답안을 찾아나가고 있다. 개미의 지능은 낮지만 여러 개체가 의사교환을 하는 개미 집단 전체의 문제해결 능력 또는 지능은 비교적 높다. 이는 컴퓨터에서 초보적 작업을 수행하는 여러 소자(素子)를 연결해 고도의 작업을 수행하게 하는 네트워킹 작업에 상응한다. 식물학의 데이터와 관찰은 프랙털 패턴의 분석에 도움을 주고, 생물체의 면역 메커니즘은 문자 그대로 컴퓨터 ‘바이러스’와 싸우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미래에 디지털 공학과 생물학이, 컴퓨터와 생물체가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는 단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디지털 형태의 의미소(意味素·Meme)가 자체 복제를 넘어 진화하기 시작할 경우 궁극적으로 자연계에서 생명체가 거듭해온 진화의 형태와 흡사할 것이다. 양쪽이 닮아갈수록 디지털계가 생물계에 줄 수 있는 도움도 커진다. 이미 생명의 내부논리를 간직하고 있는 컴퓨터를 통해 생명계가 맞을 수 있는 위기를 미리 예측하거나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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