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교계에서 차 전문가로 이름난 두 스님이 ‘전통차’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주인공은 태고종 선암사의 지허(指墟) 스님과 조계종 대흥사 일지암의 여연(如然) 스님. 이들은 3월부터 불교계 전문지인 ‘불교신문’을 통해 4차례에 걸쳐 반박과 재반박의 논쟁을 펼치고 있다.
지허 스님의 차는 10번 이상 찻잎을 볶고 일일이 손으로 비벼 만든 고급품. 여연 스님의 차는 저렴하면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전통차 논쟁은 지허 스님이 올 1월 ‘지허 스님의 차-아무도 말하지 않은 한국전통차의 참모습’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점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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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 스님은 이 책에서 ‘현재 대부분의 차나무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야부기다종으로 자생 차나무는 선암사, 전남 보성 대원사 등 일부에만 있다. 자생 차나무의 차는 다갈색에 구수한 숭늉 맛이 난다’는 주장을 폈다. 흔히 쪄서 만드는 ‘녹차’는 일본에서 들어온 왜색차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녹차를 주로 만들어온 여연 스님이 3월 중순 불교신문에 ‘차를 알고 써야 차맛 나지’라는 제목으로 반론을 폈다.
여연 스님은 지허 스님의 책이 차의 육종학이나 일반 차 이론을 무시한 글이라고 반박했다. 차나무도 사과나 배처럼 육종을 통해 개량해야 맛과 향에서 뛰어난 품종을 얻을 수 있으며 수명이 150년 이내인 야생 차나무를 그대로 놔두면 돌배나 돌사과처럼 점차 찻잎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 다시(茶詩)를 살펴보면 가장 좋은 차에 대해 색은 ‘취색(翠色)’, 맛은 ‘소락재호(옅은 우유나 치즈맛)’, 향은 ‘진향(眞香) 난향(蘭香) 순향(純香) 청향(淸香)’이라고 돼있는데 다갈색에 숭늉 맛만 나는 차를 전통차라고 고집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지허 스님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비취, 청취’나 ‘소락재호’는 다갈색의 숭늉 맛이라는 기본 위에 덧붙여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허 스님은 또 “녹차가 공장에서 만든 사기그릇이라면 ‘다갈색의 숭늉 맛이 나는 차’는 손으로 만든 도자기와 같다”고 설명했다.
여연 스님은 “다갈색의 차는 일종의 발효된 차로 녹차에서 변형된 것이며 결코 차의 주류가 아니다”고 말했다. 여연 스님은 지허 스님의 주장에 대한 반박 글을 다시 제기할 예정이다.
이들의 차 논쟁은 조계종과 태고종의 해묵은 갈등에 대한 언급까지 번지고 있다. 지허 스님이 “1960년대 초 조계종이 정화운동을 명목으로 사찰을 접수할 때 죽창으로 선맥(禪脈)과 함께 다맥(茶脈)까지 지켰다”고 주장하자 여연 스님은 “조선시대 선맥이 어떻게 근대에 이어졌는지도 잘 알 수 없는데 다맥을 이었다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석정원차회를 운영하는 석선혜 스님은 “차는 차나무, 만드는 법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며 “선암사에서 대대로 전수된 차가 전통차임에는 틀림없지만 나머지 차를 모두 왜색으로 모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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