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여자의 힘' 스포츠과학 분석 아줌마 체력

  • 입력 2003년 5월 29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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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동 체육과학연구원에서 40대 직장인 조성숙씨가 오른팔 미는 힘을 측정받고 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23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동 체육과학연구원에서 40대 직장인 조성숙씨가 오른팔 미는 힘을 측정받고 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인 아니카 소렌스탐은 최근 남성의 세계인 미국 PGA 투어에 도전했으나 남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컷오프됐다. 근력 열세로 비거리가 짧았던 것이 탈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13일 런던마라톤에선 영국의 폴라 래드클리프가 2시간15분25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 기록은 남자 세계 최고기록에 불과 9분47초 뒤진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힘이 약하다’는 명제를 놓고 스포츠과학은 계량적으로 연구해 왔다. 남성호르몬의 양과 적혈구 숫자 등의 차이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근력에서 약 35∼50%, 지구력에서 약 20% 정도 뒤지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러나 한 손에 아기를 안고 다른 손에 시장바구니를 든 채 아기를 안은 손으로 현관문을 여는 ‘아줌마의 힘’. 남성들과 함께 밤샘 근무를 하고도 다음날 오히려 더 쌩쌩한 여성 직장인의 지구력도 놀랍다.

과연 평범한 여성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근력이나 완력은 물론 지구력 순발력 등 모든 분야에서 약하기만 할까.

23일 오후 4시, 네 명의 ‘아줌마’와 함께 서울 노원구 공릉동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을 찾았다. 체육과학연구원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근력 및 지구력을 측정해 분석하는 곳.

이곳에서 30대 초반 직장여성과 전업주부, 40대 초반 직장여성과 전업주부 등 4명이 체력 테스트를 받았다. 측정 대상은 근력, 민첩성, 유연성, 체지방, 지구력의 다섯 분야. 모든 측정은 국가대표 선수에게 쓰는 방식에 따랐다. 측정 및 결과 평가는 체육과학연구원 전문체육연구실 정동식 수석연구원(교육학 박사)이 맡았다. ‘평범한 여자의 힘’을 스포츠과학 분석을 통해 수치화하는 작업이었다.

체력테스트 참가자 명단

이지영(30) 홍보대행사 프레인 과장

이지영(32) 전업주부(직장인 이지영씨와 동명이인)

조성숙(43) 외환은행 CRM 마케팅팀 차장

이명애(43) 전업주부

●30대 직장인의 손아귀 힘

이지영씨(30. 홍보대행사 프레인근무)

직장인 이지영씨는 1997년 1월 결혼했고 2000년 9월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차로 출퇴근하는 데다 평소 사무실에 앉아 일하기 때문에 크게 움직일 일이 없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외근 때 버스나 전철을 타면서 10∼20분 걷는 게 전부다.

악력(손아귀로 쥐는 힘)이 오른손 32.8kg, 왼손 29.4kg으로 4명 가운데 최고. 나머지 3명도 악력은 30kg 근처로 비교적 높게 나왔다. 수영 여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악력 평균이 32.62kg(많이 쓰는 손), 30.49kg(많이 안 쓰는 손)인 것에 비하면 ‘아줌마’들의 손아귀 힘은 남편 장악력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상당한 수준. 역도 등 몇 종목을 빼면 운동선수라고 해서 특별히 악력 훈련을 하지는 않는다. 또 손 근육은 일반인도 평소 많이 쓰는 부분이어서 선수들과 큰 차이가 없다.

직장인 이씨의 경우 허리힘을 나타내는 배근력(허리 부근 등 근육)이 68kg으로 참가자 가운데 가장 낮다. 아들이 이미 여섯 살이어서 아들을 안아주는 일도 많지 않다. 차에서 집까지 물건을 옮길 때 외에는 무거운 것을 드는 일도 별로 없다. 허리 근육의 훈련이 거의 안 돼 있는 상태.

오른팔로 잡아당기는 힘이 22kg으로 오른 다리가 잡아당기는 힘(20kg)보다 오히려 높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보통 사람들은 다리 힘이 팔심보다 더 센데 이씨는 반대인 셈. 오른팔 힘이 세어서라기보다 다리 힘이 약한 탓으로 분석돼 걷기 운동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30대 전업주부의 허리 힘

이지영씨(32.전업주부)

주부 이지영씨는 대학에서 기계체조를 전공했다. 젊은 시절 체력은 프로선수에 가까웠다. 그러나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서 기계체조를 그만뒀다. 2001년 3월 아기를 낳고 회사를 그만뒀다.

이씨는 오른 다리 당기는 힘과 오른팔 당기는 힘이 18kg으로 같다. 다리의 당기는 힘이 오른쪽 18kg, 왼쪽 19kg으로 4명 가운데 가장 낮다. 다리를 많이 안 쓰는 여자 양궁 대표선수 평균(오른쪽 24.58kg, 왼쪽 23.79kg)에 비해도 크게 떨어진다. 이씨는 평소 문화센터나 아기 놀이방에 갈 때에도 차를 이용하는 탓에 걷는 일이 거의 없다.

민첩성을 나타내는 사이드스텝(20초 안에 좌우로 몸을 몇 번이나 움직일 수 있는지 측정) 수치도 22회로 다른 참가자(27∼33회)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민첩성은 몸을 얼마나 빨리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평소 운동을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

그런데 허리 힘을 나타내는 배근력은 무려 94kg으로 나와 다른 참가자(68∼80kg)를 압도했다. 이는 수영 여자 국가대표 평균인 86.50kg보다도 높은 수치. 배근력은 평소 무거운 것을 꾸준히 드는 훈련으로 강해진다. 이씨는 27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전업주부로 평소 다른 사람들보다 무거운 것(아기 안아주기 등)을 드는 훈련이 잘 돼 있음이 나타났다.

●40대 직장인의 지구력

조성숙씨(43.외환은행 CRM마케팅팀 차장)

은행 근무 경력이 23년인 조성숙씨. 평소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0시 넘어 퇴근한다. 초등학교 시절 배구 선수였고 20대 초반에는 테니스를 즐겼다. 최근에는 한 달에 두세 번 골프 연습장을 찾는다. 버스로 출퇴근하며 이때 약 10분 정도 걷는다. 주말에 두 시간 정도 청소를 한다.

배근력이나 팔다리 힘은 약한 편. 그러나 민첩성을 나타내는 사이드스텝은 33회로 참가자 가운데 최고. 여자 수영 국가대표 평균인 34.67회와 맞먹는다.

유연성은 허리를 앞으로 숙여 손이 발바닥 위치보다 얼마를 더 넘어서느냐로 측정했다. 조씨는 18cm를 더 넘겨 참가자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는데 이는 양궁 남자 국가대표 선수 평균(14.34cm)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 근력이나 지구력은 남자가 여자보다 뛰어난 데 비해 유연성은 일반적으로 여자가 더 뛰어나다.

조씨는 스스로 “체력은 어느 남자 못지않다”고 말했다. 평소 늦게까지 일해도 잘 지치지 않으며 밤을 새워도 다음날 가장 쌩쌩한 축에 든다는 것. 이는 지구력 테스트에서 수치로 나타났다.

지구력은 5분 동안 계단을 일정한 속도로 오르내린 뒤 3회에 걸쳐 심박수를 측정해 계산하는 하버드지수를 사용했다. 조씨의 지수는 89.3으로 양궁 여자 국가대표의 평균 수치(88.38)보다 높았고 양궁 남자 대표 평균(89.63)과 맞먹었다.

●40대 전업주부의 다리 힘

이명애씨(43.전업주부)

이명애씨는 고등학교 2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결혼 16년째 주부. 평소 움직임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4개월 전부터 매일 집 근처에서 6km 정도를 꾸준히 걷고 있다.

지구력을 나타내는 하버드지수가 87.2, 민첩성을 나타내는 사이드스텝 횟수가 32회로 비교적 높게 나왔다. 배근력과 팔심도 상위권. 체지방 비율이 33%로 다소 높지만 꾸준한 운동을 통해 신체 기능을 전반적으로 원활하게 가꿨다는 평가.

다리의 미는 힘이 놀랍다. 오른쪽은 41kg이고 왼쪽은 무려 47kg. 다른 참가자(26∼36kg)를 압도하는 것은 물론 이씨의 왼 다리 미는 힘은 수영 여자 대표(42.06kg)나 양궁 여자 대표(43.11kg)보다도 높다. 다리의 미는 힘은 걷기나 달리기를 통해 길러진다. 4개월째 꾸준한 운동을 한 이씨의 다리 힘이 어지간한 국가대표 선수와 맞먹을 정도.

물론 이를 남자 국가대표와 비교하면 많이 떨어진다. 양궁 남자 대표의 왼 다리 미는 힘은 77.20kg, 수영 남자 대표는 60.39kg이다.

●남자와 여자의 운동 능력 차이

이들 여성의 근력, 지구력을 보면 경우에 따라 신체 능력이 여자 국가대표선수를 넘어서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유연성을 뺀 나머지 분야에서 남자 선수에 육박하는 수치는 나오지 않았다.

실제 연구 결과 남자와 여자의 운동 능력은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사춘기를 지난 14세 이후부터 운동 능력은 뚜렷이 차이가 난다.

흔히 ‘힘이 세다’거나 ‘힘이 없다’고 말하는 판단 기준인 근력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얼마나 많은가로 결정된다. 그런데 사춘기 이후 여자에게는 이 호르몬 대신 여성 지방 촉진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많이 분비된다.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남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어지는 것. 남성 호르몬이 부족한 여자는 같은 양의 운동을 하더라도 근육 발달이 남자에 비해 떨어진다. 지구력도 차이가 난다. 지구력은 피가 산소를 얼마나 많이 운반할 수 있느냐에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산소 운반 기능을 하는 적혈구와 헤모글로빈 숫자가 사춘기를 전후해 남녀 사이에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지구력도 평균 20% 정도 남자가 좋다.

체지방 비율이 낮을수록 운동 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체지방 비율이 낮다는 것은 지방이 적은 대신 그만큼 몸에 근육이 발달했다는 뜻.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지방을 축적시키는 호르몬이다. 엉덩이 종아리 가슴 등 여성의 몸 부위가 남자에 비해 풍만한 것도 이 부분에 지방을 축적시키는 에스트로겐 역할 때문. 이 호르몬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체지방 비율이 높아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20세 전후 여자의 체지방 비율은 같은 나이의 남자보다 갑절가량 높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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