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에
새끼를 쳐 나간 까치집이 남았다.
감나무에
한참 좋은 화력을 가진 삭정이
나무 곳간이 남았다.
둘이서,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마음 곳간에 삭정이가 남았다.
하루 해가 저물어갈 때
환한 마음의 아궁이에
불이 지펴진다.
솥뚜껑 들썩거리며
쌀밥이 익어간다.
감나무에 머문 홍시 노을
한참 가마솥에 뜸이 든다.
침이 부푼다.
-이윤학, 까치집
집 짓는 법을 몰라 밤마다 오들오들 떨던 까치는 이름난 목수, 비둘기를 찾아간다. 지붕을 얹을 무렵 대가를 치르는 게 아까워진 까치는 휙 돌아가 버린다. 그래서 까치네 집에는 빗물이 샌다고 할머니는 어린 손자에게 이른다. 까치로서는 명예롭지 못한 유래담이나 엉성한 까치집을 보면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한다.
한데 아이가 자라 나중에 드는 생각은 좀 다르다. 집 잘 짓기로 유명하다는 비둘기 집은보이지 않고, 도처에 까치집만 둥글다.
혹시 밤새 오들오들 떠는 건 까치가 아니라 비둘기가 아닐까? 까치집만큼 튼튼한 집도 드물다. 대못 하나, 노끈 한 발 쓰지 않았지만 태풍에 나무 밑동이 쓰러지는 건 봤어도 까치집이 날아가는 건 본 적이 없다. 방화관리 또한 철저해서 저 삭정이 목조건물에 불 한 번 났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없다.
아무리 빈 집이라지만 남의 집을 불쏘시개 삼아 솥밥을 짓다니 까치가 보면 홰를 칠 일이지만 밥 짓는 풍경이 그럴 듯하다. 잘 마른 나뭇단에 석양으로 부싯돌을 켜니 부뚜막이 환하다. 저녁연기 오르고 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석달열흘 노을이 불을 지펴도 저 삭정이 곳간은 다 타지 않을 터, 시인이 지은 까치밥(?)으로 해거름녘 나그네들이 허리띠 풀어놓고 저녁상을 받게 됐다. 그 상이 참 푸짐하고 따습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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