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자랑하기엔 쑥스러울 때 사용되는 완곡한 표현이 “음미체 때문에 손해봤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치고 음악 미술 체육 때문에 손해 안보는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큰 아이가 이번에 중1 중간고사를 끝내고 성적표를 받아보니 역시 그랬다. 모두 11과목을 배우는 중학교에서 기말고사는 전과목을 다 보지만 중간고사는 일부만 보는데, 우리 큰 아이 학교는 미술을 제외한 10과목 시험을 치렀다. 성적표가 나와 보니 전체 평균 90점 이상인 아이가 한 반에 4, 5명은 되었다. 성적표는 전체석차와 과목석차를 명시하는데 대부분 과목석차는 전체석차 안팎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 체육은 예외였다. 오히려 공부를 잘 할수록 예체능에 약해서 다른 과목 석차와 역행하는 경향이 있었다. 시험을 잘 본 아이일수록 음악 체육에서 평균점수가 깎이는 비중이 커지게 된다.
우리 큰 아이 반 1등 아이도 음악 체육을 제외하면 대략 평균 97점, 음악 체육을 합산하니 95점이 되었다. 밤잠 못 자고 공부해서 8과목에서 막은 ‘손실’이 평균 3점인데, 음악 체육 두 과목에서만 평균 2점을 깎이고 나면 억울하지 않겠나. 일부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는 예체능 점수를 후하게 준다고 하는데, 불공정한 해결은 안 된다고 본다.
아이가 공부도 예체능도 다 잘하면 좋지만 현실을 따져보자. 아이들 대부분 학원이나 과외, 학교 숙제 때문에 평소에도 밤잠을 줄이는 지경으로 시간이 없다. 공부를 잘할수록 예체능 연습도 열심이지만 연습에는 한계가 있다. 암기과목도 아닌데, 100m 달리기 죽기살기로 며칠 연습한다고 18초가 17초 되나. 평소 열심히 공부하는 녀석일수록 ‘몸치’가 된다.
시험을 잘 보고도 예체능 때문에 석차가 바뀌다보니 아이들 사이에서는 학교석차보다 주요 과목시험만 치르는 학원시험을 더욱 신뢰하는 풍조까지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2학년 이상은 예체능이 빠지기 때문에 아주 틀린 생각도 아닌 것 같다.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예체능교육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에게 만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것도 중학교 한 시기에만. 이는 결국 중학교 예체능 과목에서 ‘손해’를 보지 않도록 초등학교 사교육을 부추긴다.
요즘 아이들, 모든 학교생활이 수행평가 점수로 계량되다 보니 숨쉴 구멍이 없다. 예체능시간이나마 숨통 좀 터 주면 안될까. 점수 편차를 줄이고 일정시간 이상만 참여하면 점수를 준다든지, 음악 미술 체육이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개선이 절실하다.
박경아 서울 강동구 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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