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무대에서 배우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은 연출자의 몫이다. 훌륭한 배우는 ‘태어나는’ 것이지만, 극에 맞는 배우의 역할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뮤지컬 ‘그리스’는 연출자 이지나의 역량에 힘입은 바 크다. 뮤지컬 경험이 전혀 없거나, 그리 많지 않은 배우들이 노련한 주연급 배우들과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치밀한 연출과 치열한 연습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재빠른 호흡으로 치고받는 ‘톡톡 튀는’ 대사는 마치 애드리브 같은 느낌을 준다. 계단을 오르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대목은 실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모두 사전에 호흡을 맞춘 것들. 오히려 배우들은 연습기간 동안 섣부른 애드리브를 구사하려다 연출자의 혹독한 질책을 들었다는 후문.
극은 시종 분주하고 경쾌하다. 공연은 잠시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듯 에피소드를 이어나간다. 빠른 전개는 끊임없이 관객에게 공연에 몰두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는 1950년대 미국 ‘불량’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차를 훔치고, 담배를 피우고, 패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분명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보다는 ‘귀엽게’ 묘사된다.
불량기 넘치는 대니와 순진한 여학생 샌디의 사랑이 이야기의 축. 여기에 어울리는 몇 커플이 엮였다. 갖은 오해와 우여곡절 끝에 대니와 샌디는 서로를 닮아가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사랑을 확인한다.
1978년대 올리비아 뉴튼존,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로 알려졌으며, 사용된 곡들이 귀에 익은 로큰롤 리듬이라는 점 등은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할만한 요소지만, 실제로 공연은 10대와 20대의 ‘현재적 취향’에 맞춰졌다. 25년 전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리스’의 기본 개념과 소구 대상은 역시 ‘젊음’이다.
구어체를 한껏 살린 대사에 경쾌한 춤과 노래는 특별히 돋보이는 캐릭터 없이도 재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지루하지 않게 만들려다보니 드라마의 전개와 갈피를 잡기가 다소 어렵다.
에피소드가 ‘줄거리’를 쫓아가기 보다는 ‘볼거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종 흥겨운 리듬을 타야할 관객이 이런 점을 곱씹을 여유를 갖는 시점은 아마도 막이 내린 이후가 될 듯.
스태프와 배우들은 대학로 폴리미디어 극장에서 마련된 열흘간의 프리뷰 공연에 이어 본 공연을 준비했다. 크지 않은 규모의 극장에서 보여준 관객과의 ‘호흡일치’가 무대를 옮겨서도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는 연출자의 숙제로 남는다.
7∼29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화∼금요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4시, 7시30분. 일요일 오후 3시, 6시. 4만∼6만원. 02-552-2035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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