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가 내놓은 ‘한국사 오디세이’(전 2권·바다출판사)는 역사와 예술, 문학간의 절묘한 결합체라 부를 만하다. 작가에게 있어 역사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디세이’는 ‘세계사로서의 한국사’를 이야기하려는 시도다. 빅뱅(Big Bang)과 이탈리아의 조각가 폰타나의 작품이 그의 ‘한국사’에 담겨 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시인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왜 ‘한국사’인가?
“우리나라 역사서는 닫혀 있고 편협하며 맥락이 없어요.”
그동안의 역사서는 통사라 해도 따로 기술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합친 데 불과했다는 설명이다. “역사서는 왜 장편소설을 읽었을 때와 같은 감동이 없을까요. 역사는 수백억명이 지나온 자취인데 말이죠. 이건 역사서가 총체적인 ‘감’을 주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래서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시 좀 잘 쓰려고 공부하다 보니 기존에 있는 책들이 마음에 안 들어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한테 제대로 된 책 좀 쓰라고 꾀다가, 잘 안 돼서 내가 직접 쓴 거죠.”
시집만 21권. 다른 저서들은 모두 몇 권이나 되는지 묻자 “그런 건 중요치 않다”고 말을 자른다. 수많은 저작 가운데 ‘자선(自選) 5편’을 꼽아 달라고 하자 느닷없이 “소설 ‘파경과 환경’(푸른숲·2000) 이후 내 문학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 소설에서 그는 ‘20세기’ 자체를 인물로 설정하고 그 바탕 위에 전설 환상 역사와 인류 문명을 아울렀다.
“소설을 200장쯤 쓰다 보니 내 계획이 내 실력으로 집행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역사를 파고들었죠. 역사공부를 마치고 소설로 돌아와 50장가량 써 내려가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이번에는 예술교양서를 쓰려고 목차를 잡아가면서 보니까 쓸 만해지데요. 소설을 쓰려다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한 거죠. 그리고는 문학이 달라졌어요. 99년에 ‘김정환 시집 1980∼1999’를 냈는데 이제는 옛날 시집 못 보겠더라고요.”
집에서 만난 그는 브라운 톤의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패션’을 고수한 지 10년이 넘었다. 똑같은 셔츠만 열 벌쯤 된다. 거리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치면 짝짝이 슬리퍼를 신은 맨발이 눈에 확 들어온다. 술집에서 한 짝이 바뀐 탓이다. 모양뿐 아니라 높이마저 다른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그는 일견 방심의 극한에 이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그는 시와 소설을 쓰면서 동시에 다른 영역으로 관심의 지평을 부지런히 확장해 왔다. 그 결과물이 음악교양서 ‘음악이 있는 풍경’ ‘내 영혼의 음악’, 역사교양서 ‘20세기를 만든 사람들’ 등이다. 지금은 원고지 1만장에 이르는 예술교양서를 준비 중이다.
“다른 장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엑스터시를 경험하게 합니다. 각기 다른 영역이 글을 매개로 만나니까요.”
언젠가 그는 클래식 음악을 알기 위해 음반을 500장쯤 듣다 보니 귀가 뚫리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거실의 한쪽 벽면은 음반으로 빼곡히 차 있었다.
“시의 경우, 단 1행에 감동받더라도 그 시인의 모든 작품을 찾아봐요. 그게 예술 공부의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지 않으면 발전을 못 하죠. 음악? 심상하게 듣다가도 감동과 전율이 느껴지면 ‘저 건방진 자가 나를 감동시켜?’(웃음) 하고 그 사람의 모든 음반을 사요. 무엇이 나를 움직일까. 연주자 형식 음색 등을 낱낱이 인지하고 분석하면서 지겨울 때까지 들어요. 지겨워지면 공부를 다한 거니까.”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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