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늘 내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남자가 하라는 대로. 그 남자에게 나는 한 푼의 가치도 없을뿐더러, 지참금을 얹어서라도 내쫓고 싶은 의붓딸이다. 이제 열네 살이나 되었으니까 하루 빨리 시집을 가라고 하지 말고, 꼴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될 것을.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내 백일잔치도 못 치르고 죽은 아버지….
저녁놀이 사라지자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제 그만 돌아가지 않으면 꾸중을 듣는다, 고무줄을 주어 둘로 접고 다시 접고 또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지만 일어설 수가 없다. 졸졸졸졸 땡 땡 음매 음매 치르르르 치르르르 아이스 케이키 아이스 케이키 음매 음매 딸랑딸랑, 솜으로 싼 것처럼 뿌옇게 들리는 온갖 소리 속에서, 우곤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고맙다! 힘주어 종을 치면 소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진동하는 것처럼, 내 가슴은 그 사람의 목소리에 떨고 있다. 큐큐 파파, 두근두근, 그 사람의 호흡과 고동이 내 안에서 울리고 있다. 검고 날카로운 눈매, 웃으면 커다란 앞니가 들여다보이는 입, 분노도 기쁨도 전체로 표현하는 얼굴,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고 에이코는 갓 부풀기 시작한 젖가슴을 두 손으로 껴안고 한숨을 토했다. 한숨이 몸과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켰을 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다가왔다.
글 유미리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