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vs 디지털]밀러 교향곡 8번

  • 입력 2003년 6월 10일 18시 45분


최근 부천 필하모닉이 주최한 말러 교향곡 8번 연주회는 공연을 보름이나 앞두고 좌석이 모두 매진돼 화제를 낳았다. 본디 말러를 무대에 올리는 연주회는 입장권이 일찍 움직이기로 유명하다. 주요 매체에 공연 안내가 소개되기도 전에 열광적인 ‘말러교도’들이 표를 사버리기 때문이다. 단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점이 공연 주최자들에게는 못내 유감이었는데, 이제 ‘말러교’는 신도 수마저 만만치 않음이 입증됐다.

‘천명의 교향곡’에 동원되는 연주자 수는 평균 350명 남짓이다. 8명의 독창자와 둘 이상의 대규모 성인합창단, 어린이합창단, 초대형 관현악단과 오르간 등이 필요하다. 악보 출판업자가 붙인 선동적인 제목을 실현하려는 사람도 종종 있어 때로는 연주자와 청중 수가 엇비슷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말러는 지인에게 ‘지금까지 내가 쓴 작품은 모두 이 곡의 서곡(序曲)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양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라고 규모와 내용의 거대함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이 곡 후반부의 가사로 독일민족의 초월적 정전(正典)인 괴테의 ‘파우스트’ 2부 마지막 부분을 사용했다.

30여년째 이 작품의 챔피언격으로 군림하는 음반이 게오르그 솔티 지휘 시카고 교향악단의 앨범(데카·1972)이다. 당시 크게 발전한 믹싱기술을 활용, 수많은 마이크를 사용해 생생하고 또렷한 표정으로 이 괴물 같은 대곡을 잡아냈다. 마지막 부분의 테너 독창에 이어 ‘신비의 합창’으로 이어지는 화음의 물결은 숨이 막힐 정도. 이 음반에 한번 중독되면 그 뒤의 수많은 디지털 명녹음도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벙벙대는 듯이 들리고 만다.

솔티의 리드 역시 맺고 끊기가 칼같이 분명해서 ‘수많은 인원을 이 정도로 정확히 움직이려면 공이 꽤 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큰 편성의 악곡을 녹음하는 데 있어 데카는 70년대 초반 남다른 노하우를 갖고 있었으며, 이 음반은 정점에 이른 당시의 녹음기술이 이뤄낸 대표적 성과물의 하나다.

같은 데카사의 최신 녹음인 리카르도 샤이 지휘 로열 콘서트헤보의 음반(2000)은 말러 연주에서 ‘개성보다 중용’을 선택해온 샤이의 결정이 단점보다 장점으로 드러난 경우다. 복잡한 작품 진행의 선(線)에 주관을 첨가하기보다는 단정하고 풍요롭게 마무리하는 데 역할을 한정하고 있다. 이 최신녹음 음반마저도 솔티 음반에서 들려오는 합창의 환상적인 질감은 전해주지 못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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