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임동혁 수상거부로 본 국제 콩쿠르 편파심사 시비

  • 입력 2003년 6월 10일 18시 48분


195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열연을 펼치는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동아일보 자료사진
195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열연을 펼치는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동아일보 자료사진
신동 피아니스트 임동혁군의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 거부 파문이 불거지면서 국제콩쿠르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심사 공정성을 둘러싼 시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5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5회 쇼팽 콩쿠르에서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아담 하라셰비치에 이어 2등에 머무른 것에 격분해 심사위원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가 동료 심사위원들에게 강력히 항의하는 등 ‘스캔들’로 비화됐다. 국제콩쿠르 사상 가장 유명한 스캔들은 80년 쇼팽 콩쿠르에서 일어났다. 강력한 개성과 특이한 스타일로 무장한 이보 포고렐리치가 결선 진출에 실패하자 심사위원 중 그를 지지하던 마르타 아르게리치가 심사위원직을 반납한 것.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없었으나 뒷말만 무성한 경우도 있다. 구소련 개방과 함께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재정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사무국은 90년 한 일본 악기제조사에서 대대적인 협찬을 받았다. 우연하게도 같은 해 바이올린 부문 우승은 일본의 스와나이 아키코가 차지했고, 이에 대한 쑥덕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사례로는 2000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열린 부조니 콩쿠르가 있다. 당시 2차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임동혁군이 결선 진출자 명단에 오르지 못하자 현지 관객과 언론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스캔들로 비화된 것. 그 뒤 콩쿠르 사무국측은 다음해 심사위원을 전원 교체해 문제가 있었음을 간접 시인하기도 했다.

이렇듯 심사 관련 잡음이 끊이지 않자 유명 콩쿠르의 주최측은 객관적인 판정을 위해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심사위원단이 매긴 점수 중 최고점과 최하점을 제외한 뒤 합산 평균을 내는 방법은 거의 모든 콩쿠르에서 실시 중인 고전적인 방법. 제자가 출연한 경우 해당 심사위원이 심사에서 빠지는 것도 공통적인 관례다.

1996, 97년 동아국제콩쿠르를 주최한 이민희 동아일보사 사업국 부장은 “최근 2년 안에 3개월 이상 가르친 학생이 있을 경우 심사위원에서 제외되는 것이 국제콩쿠르에서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도 국제콩쿠르 출연 경험이 있는 음악인들은 “어느 콩쿠르에 가든지 심사위원과 연고가 있는 연주자들이 많이 참여한다. 스승이 심사에서 빠지더라도 동료 심사위원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역안배는 심사위원뿐 아니라 수상자에게도 적용된다. 피아니스트 강충모씨(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번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선전한 박종경 손민수씨가 최종 입상권에서 탈락한 것은 임동혁군이 수상권에 들면서 ‘한국인 정원’이 다 찼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결선 진출자 12명 중 절반이 아시아계였음을 보더라도 앞으로 한국 연주자들은 구미 연주자들보다 오히려 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스트와 부조니 콩쿠르 등에서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미경씨는 “일단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경력이 생기면 다른 콩쿠르에서도 심사를 맡는 식으로 일종의 ‘폐쇄적 서클’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현실에서는 국내 음악인들도 심사위원 등으로 활발히 진출해 세계 속에서 한국의 ‘음악적 외교력’을 키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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