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가 1, 2심에서 단독으로 증거 능력을 인정받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 사건들도 모두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결국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의 단독 증거 능력은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
그러나 수치로 나타나는 거짓말 탐지기의 정확도는 놀라울 정도다.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가 1980∼98년 수사과정에서 거짓말 탐지기로 조사받은 3034명의 사례를 재판결과와 비교한 결과, 오류 즉 판결이 조사결과와 반대가 된 것은 단 한 건뿐이었다. 정확도가 무려 99.97%로 목격자 증언(65% 수준)은 물론 정확도 95% 수준인 치흔(齒痕)이나 필적 감정보다 높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거짓말 탐지기에 대해 막연한 불신을 느낀다. 이는 법원이 검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검사 기법과 그 과학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 과정이 베일에 가려진 이유는 탐지기 전문가들이 검사 기법 공개를 꺼리기 때문. 서울지방검찰청 한상경 심리분석관은 “검사 기법이나 질문 내용이 알려질수록 조사 받는 사람들이 대비를 할 수 있어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는 어떻게 이뤄질까. 조사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을까.
●사전 장치
거짓말 탐지기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것이 탄로날까봐 겁이 나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불안과 초조는 혈압, 호흡, 피부에 흐르는 전기의 양 등에 변화를 주며 탐지기는 이를 측정해 거짓말 여부를 판단한다.
이 때문에 거짓말 검사를 할 때는 ‘긴장 정점 검사’라는 사전 장치가 필요하다. 거짓말을 할 사람은 최대한 초조하게 만들고, 진실을 말할 사람은 최대한 편안하게 만드는 게 이 검사의 임무. 이렇게 해야 실제 본검사 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초조감’ 측정이 훨씬 쉬워진다.
검사관은 피검사자에게 3∼7 가운데 하나의 숫자를 고르게 한다. 피검사자는 5를 골랐다. 검사관은 피검사자에게 “묻는 질문에 모두 ‘아니오’로 답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검사관은 “선택한 숫자가 3입니까”부터 “선택한 숫자가 7입니까”까지 다섯 번을 묻는다. 질문 형식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선택한 숫자가 3입니까”로 물었다가 다음에는 “아하, 그렇다면 4가 답이구나. 그렇죠?” 식으로 질문 형식을 바꾸면 피검사자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묻는 어조나 목소리 크기조차 일정해야 한다.
피검사자는 약속한 대로 모두 “아니오”로 답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선택한 숫자가 5입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거짓말을 한 대목에서 혈압과 맥박이 흔들리게 된다. 이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피검사자의 신경계통이 비정상이라고 보고 검사를 중단한다.
중요한 것은 검사결과를 피검사자에게 상세히 보여준다는 점. 검사관은 “5에서 거짓말을 하니까 이렇게 반응이 나오죠? 탐지기는 이처럼 간단한 거짓말도 잡아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해 준다.
이때 피검사자의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뉜다. 거짓말을 하려는 사람은 ‘거짓말은 무조건 들통나겠구나’라는 생각에 극도로 초조해진다. 이 상태에서 검사를 받으면 거짓말을 할 때 초조한 반응이 평상시보다 훨씬 커진다. 반대로 진실을 말할 사람은 탐지기에 대한 신뢰를 갖게 돼 편안한 기분으로 검사를 받게 된다.
●'강심장'도 소용없다
거짓말을 해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는 ‘강심장’이나, 진실을 말하면서도 가슴이 콩콩 뛰는 ‘새가슴’의 거짓말도 탐지기가 잡아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거짓말을 할 때 사람이 느끼는 긴장감은 자율신경에 의해 지배된다. 자율신경은 소화기관의 운동처럼 인간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응하는 신경. 사람이 밥을 먹으면서 ‘나는 절대 소화하지 않을 테야’라고 아무리 의지를 드높여도 위와 장은 음식을 소화한다. 위장 운동이 자율신경계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혈압이 높아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높아지는 정도가 다소 작을 수는 있어도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낮아지는 일은 없다. 또 변화만 있다면 그 크기는 상관없다. 탐지기는 변화의 크기를 ‘상대 평가’로 잡아내기 때문. 상대 평가를 위해 사용되는 질문이 바로 ‘컨트롤 질문’이다.
컨트롤 질문이란 응답자가 사건에 대해 의심을 받을까봐 ‘아니오’라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질문이다.
절도 용의자가 탐지기 검사를 받는다고 하자. 검사관은 “당신은 지갑을 훔쳤습니까”라는 본 질문을 하기 전에 ‘컨트롤 질문’을 먼저 한다. 예를 들면 “당신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다른 사람 물건을 한 번이라도 훔친 적이 있습니까” 같은 것.
절도 용의자는 “예”라고 답하면 혹시 의심을 더 받게 될까봐 “아니오”라고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혈압과 맥박, 피부 전기반응 등을 측정한다. 용의자가 강심장이라면 반응은 약하게, 새가슴이라면 반응은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그 뒤 본질문(‘지갑을 훔쳤습니까’)을 던진다. 용의자는 역시 “아니오”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때 나오는 반응의 강도를 컨트롤 질문 때 들은 거짓말 반응의 강도와 비교한다. 거짓말을 판별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마다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각각의 상대적인 반응 크기를 기준으로 거짓말을 판별하는 셈.
컨트롤 질문은 반드시 응답자의 거짓말을 유도해야 한다. 사기 용의자에게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습니까”, 성추행 용의자에게는 “지나가던 여자에게 성적 욕구를 느낀 적이 있습니까” 등이 사용될 수 있다.
만약 피검사자가 “예”라고 솔직히 말하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반드시 “아니오”라는 거짓말을 들어야 본질문과 상대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
컨트롤 질문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컨트롤 질문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꺼린다.
●거짓말 탐지기의 한계
2000년 10월 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사거리에서 이모씨(당시 48세)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을 했다는 이유로 범칙금 6만원을 통고받았다. 이씨는 “이미 사거리에 진입한 뒤 좌회전 신호가 노란 불로 바뀌었으므로 좌회전을 하는 게 정당했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반면 범칙금을 물린 경찰관은 “이씨는 분명히 노란 불이 켜진 후 사거리에 진입했으므로 신호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경찰관과 이씨는 모두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 반응이 모두 ‘진실’로 나왔다.
이것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의 대표적인 한계다. 거짓말 탐지기가 규정하는 ‘거짓말’은 객관적 사실에 위배되느냐 여부가 아니다. 피검사자가 진실로 믿는 것을 그대로 말하면 탐지기는 객관적 사실이 무엇인가와는 관계없이 그것을 ‘진실’로 측정한다.
즉 실제 이씨가 신호 위반을 했느냐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이씨나 경찰관이 각자 무엇을 진실로 믿고 있느냐로 참과 거짓을 판별한다. 이 사건에서 이씨는 자신이 사거리에 진입한 뒤 노란불이 켜졌다고 믿었고, 경찰관은 노란 불이 켜진 뒤 이씨가 사거리에 진입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상반된 주장을 펼친 두 사람 모두의 반응이 진실로 측정된 것. 이씨는 2001년 6월 ‘신호 위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거짓말의 성격’도 판별 여부에 영향을 끼친다. 거짓말이 탄로나도 전혀 초조할 이유가 없는 거짓말, 이를테면 오늘 아침을 먹었는데도 안 먹었다고 하는 종류의 거짓말은 탐지기로 측정하기 어렵다.
이 밖에 병이 있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 임산부나 수면부족 등 신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사람들은 아예 검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 검사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검사를 받게 할 수 없다.
(도움말:서경대 행정학과 신성섭 교수, 한국폴리그라프(거짓말탐지기)협회 박판규 회장)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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