拔-뺄 발 塞-막을 색 泉-샘 천
諸-여러 제 攘-물리칠 양 變-변할 변
한자의 象形文(상형문)을 설명할 때 例(예)로 드는 글자가 日 月 山 川 草 木 등이다. 木은 힘차게 뻗은 나뭇가지를 표현한 전형적인 象形文이다. 그 나무의 뿌리 부분을 부호로 표시한 것이 本, 나뭇가지의 끝 부분을 표시한 것이 末(말)이며 가지 끝에 열매(田)가 달려있는 것이 果다. 本은 후에 ‘바탕’, ‘根本’(근본)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源에 들어있는 ‘原’은 깎아지른 바위틈에서 물이 솟아나고 있는 모습으로 ‘샘’을 뜻한다. 어쩐지 ‘泉’(천)과 모습이 비슷하다. 지금은 ‘언덕’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본뜻이 아니라 후에 덧붙여진 뜻이다. 原에 수(수· 水와 같음)가 덧붙여지면 우물이나 샘의 源泉을 뜻하게 된다.
本과 源은 모두 바탕, 시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拔本塞源이라면 어떤 일이나 사물의 잘못을 찾아내 밑바탕부터 처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흔히 ‘싹을 자른다’는 말을 하는데 拔本塞源은 그것보다도 더 강한 의미인 셈이다.
중국에서 天子(천자)와 諸侯(제후)는 엄격한 主從(주종)관계였다. 그래서 天子로부터 땅을 하사받은 諸侯는 자국을 독자적으로 다스리면서 天子를 받들고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소위 尊王攘夷(존왕양이)가 그것이다. 이 같은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매년 일정한 때에 정중한 의식절차를 가졌다. 그러나 후에 天子의 권위가 떨어지고 제후국이 강해지면서 天子를 업신여기는가 하면 심지어는 군대를 動員(동원)하여 싸우거나 天子의 지위를 넘보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다.
기원전 533년 春秋時代(춘추시대) 때의 일이다. 周(주)나라와 晉(진)나라가 손바닥만한 땅을 가지고 다투었다. 晉이 먼저 周를 치자 景王(경왕)이 신하를 보내 점잖게 꾸짖었다.
‘지금 우리와 그대는 나무와 뿌리, 샘과 源泉의 관계와 같다고 하겠소. 그럼에도 나무의 뿌리를 뽑아내며(拔本) 샘물의 源泉을 틀어 막아버린다면(塞源) 이는 根本을 송두리째 허무는 행위가 될 것인즉 오랑캐조차 우리를 섬기지 않으려 할 것이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晉의 大夫(대부) 韓宣子(한선자)는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땅을 되돌려 줌으로서 양국의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보면 拔本塞源의 본디 뜻은 ‘根本을 망치는 행위’로 지금과는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의미의 變質(변질)인 것이다. 이런 예는 많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 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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