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숲:보기, 읽기, 담기'…들어봐요, 꽃과 벌레의 노래

  • 입력 2003년 6월 20일 17시 19분


자욱한 안개는 여름 숲을 신성함이 깃든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대관령 자연휴양림의 금강송 군락.사진제공 현암사
자욱한 안개는 여름 숲을 신성함이 깃든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대관령 자연휴양림의 금강송 군락.사진제공 현암사
◇숲:보기, 읽기, 담기/전영우 글·사진/180쪽 8500원 현암사

자연체험 교육을 전파하고 있는 미국의 자연주의자 조지프 B 코넬은 인간과 야생동물도 서로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선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주변에 있는 동물들에게 충심으로 고마움을 전하라. 그리고 동물의 소리를 가만히 들어 보라. 사슴이나 다람쥐에게 속삭이듯, 달래듯 반복해서 이야기하라. 동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할 때, 똑바로 가기보다는 옆으로 조금 돌아서 다가가라. 그래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그저 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중이라는 인상을 동물들에게 주어라….”

그는 이렇게 해서 초원에서 세 마리 사슴과 가까워진 친구의 이야기를 전했다. 사슴들은 그를 완벽하게 하나의 동료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다리를 뻗고 쉬는 밤에 각자가 한 방향씩 맡아서 경계를 할 때 그에게 네 번째 방향을 맡기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정도까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맨발로 숲을 걸으며 숲의 냄새를 맡고 그 색감을 즐기며 나무와 새들과 곤충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다.

산림생물학자인 저자(국민대 교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따라가며 오감을 열고 숲과 소통한 체험을 들려준다.

▽봄=숲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새롭습니다. 얼굴을 스쳐가는 남실바람이 이제 꽃샘추위까지 물러갔다고 은근히 속삭입니다.

▽여름=신록 아래로 흐르는 개울물에 발 담그고 온갖 시름 씻겨 보낸 때가 언제입니까? 여름 숲을 가로질러 괄괄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는 여름 숲의 축복입니다.

▽가을=가을 숲 소리는 단풍의 현란함 덕분에 쉬 귓가에까지 내려앉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풀벌레의 합창을 생각하면 숲을 찾는 이만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겨울=회색빛 겨울 숲이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완급과 고저가 다른 여러 독특한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숲의 소리를 들으며 숲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몇 가지 비결을 알려준다.

―장대비 오시는 숲의 흙길을 맨발로 걸어 봅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숲 속에 발을 고정시키고 숲을 노니는 바람에 온몸을 맡깁니다.

―나무줄기에 귀를 대고 나무 몸통 속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 봅니다.

―눈 오는 날에는 숲 속 나무와 함께 머리와 어깨에 눈을 쌓아 봅니다.

―눈을 감은 채 울퉁불퉁한 열매를 만져 보고, 가시에 살짝 찔려도 봅니다.

―숲에서 나는 향기를 말로 한 번 표현해 봅니다.

―깊은숨을 쉬면서 내 들숨에 나무의 날숨이 들어 있고, 나무의 들숨에 내 날숨이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무와 숲과 내가 하나입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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