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여름방학 교실’은 방학을 맞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테이블 매너와 요리, 음료만들기, 테이블 세팅을 가르쳐 주고 점심뷔페를 즐기도록 한 프로그램. 6일부터 7월과 8월 일요일마다 각각 4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총지배인 피터 카마이클은 이 같은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계획하면서 직원 자녀들을 먼저 무료로 참여시켜 부모들의 일터를 구경시켜 주자고 제의했고 지난달 넷째 주 일요일에 ‘엄마 아빠 직장 견학 행사’를 열었다.
미국에서 ‘직장에 딸 데려오는 날(Take Our Daughters to Work Day)’은 딸들에게 부모의 직장을 둘러보게 함으로써 사회참여의식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다. 그러나 딸이건 아들이건 막연히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 중’인 엄마 아빠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일을 하는’ 엄마 아빠를 느끼게 함으로써 부모와의 이해를 넓히고 직업에 대한 꿈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 호텔측의 설명.
이날 초등학교 3∼6학년생인 어린이 50명은 10명씩 나뉘어 2000년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석한 정상들이 묵었던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객실에서부터 포도주 창고, 비즈니스홀, 회의실, 식당, 피트니스클럽, 직원휴게실, 주방, 탈의실, 세탁실까지 살폈다. 한태숙 홍보실장은 아이들에게 “이곳에는 200개나 되는 직업이 있다”고 소개했다. 포도주 창고에서 춥다고 떨던 아이들은 34층 객실에 들어서자 “이곳에서 살았으면…” 하고 감탄했다. 최재연양(경기 의정부시 배영초교 6년)은 “유명인사가 돼 이런 방에서 묵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가 룸서비스부에 근무한다는 유진혁군(서울 가락초교 4년)은 “룸서비스는 객실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전화로 신청하면 갖다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황민지양은 “아빠가 휴일에 휴대전화로 물탱크 얘기를 많이 하셔서 그쪽 분야의 일을 하시는 줄 짐작만 했다”며 “직접 눈으로 보니 폐쇄회로 TV로 시설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코스요리를 먹으며 영어로 테이블 매너를 배우는 시간. 10세와 8세 두 딸을 둔 카마이클 총지배인은 “저녁마다 딸들과 식사하면서 예절을 가르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며 자신의 경험을 섞어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안심과 닭가슴살이 나온 최고급 메뉴였지만 아이들이 가장 기대한 것은 역시 후식으로 나오는 아이스크림. 권태욱군(서울 중곡초교 3년)이 영어로 “배가 부르다”고 하자 카마이클씨는 “유, 노 아이스크림?”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김민지양(서울 신답초교 4년)은 “영어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즐겁게 음식을 먹으며 설명을 들으니 한두 번 외웠던 단어들은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말했다.
아들 정준혁군(서울 불광초교 3년)을 데리고 남편 직장을 찾은 김갑현씨(36·은평구 불광동)는 “아이가 2학년 때 방학숙제로 아빠 직장 견학하기가 들어있어 남편이 일하는 연회부를 구경시킨 적은 있지만 이렇게 속속들이 호텔안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딸을 참석시킨 양현교씨(그랑카페 부지배인)는 “회사에서 ‘꼬마 고객들’에 앞서 직원 자녀들에게 프로그램을 맛보게 함으로써 많은 직원들이 이곳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됐을 것”이라며 “애사심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지만 세심한 배려에서 우러나온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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