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청춘, 카우보이를 꿈꾸다

  • 입력 2003년 7월 3일 16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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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가 선보인 여성적인 카우보이룩
구치가 선보인 여성적인 카우보이룩
《2004년 봄, 여름을 겨냥한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이 열린 지난달 22∼26일. 이탈리아 밀라노 일대는 35도에 이르는 이상폭염에 휩싸였다.밀라니즈(Milanese·밀라노 사람들)도 당황해하는 갑작스러운 더위에 신경이 예민해지려는 찰나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한 것은 ‘과감함’으로 요약되는 밀라니즈들의 패션 감각.

‘패션도시’ 밀라노 곳곳에서는 컬렉션 기간에 각종 쇼와 프레젠테이션, 패션 파티가 줄을 이었다.》

● 카우보이

지난해 일본에서 영감을 받은 섹시한 오리엔탈리즘을 선보인 구치의 톰 포드가 이번에는 자신의 고향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 텍사스주 출신인 그는 다양한 카우보이룩을 전면에 내세웠다. 모델들은 얼룩소 무늬의 바닥 카펫을 사뿐히 밟고 카우보이모자, 웨스턴 부츠, 손수건으로 만든 짧은 목도리를 한 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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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으로)▼디스퀘어드2의 '레트로 레저' 룩 ▼지안프랑코 페레의 카우보이룩 ▼미우미우의 '레트로 레저'룩 ▼돌체앤드가바나의 베컴 디셔츠 ▼펜디의 50년대풍 정장

작은 꽃무늬가 프린트된 화려한 색상의 셔츠나 가느다란 도마뱀 가죽 벨트, 레이스가 많이 달리고 허리 부분에 잘록하게 라인이 들어간 분홍색 셔츠까지, 포드가 명명한 ‘대륙적인 카우보이’는 터프한 마초가 아닌 로맨틱한 미소년의 모습이었다.

최근 밀라노쇼에서 포드는 핵심적인 트렌드 메이커.

그가 선보인 ‘카우보이’라는 큰 트렌드는 미우미우, 프라다, 펜디, 세루티, 니콜 파히, 캘빈 클라인 쇼에서도 보였다.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으로 안정된 쇼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은 프라다의 수석디자이너 미우치우 프라다는 ‘미우미우’ 컬렉션에서 황토색 가죽 부츠와 허리선이 들어간 재킷, 허벅지에 딱 달라붙는 팬츠로 부드러운 느낌의 카우보이룩을 표현했다. 목선이 여성의 라운드 티셔츠처럼 동그랗고 깊게 파인 니트, 양 옆구리에 크고 둥근 구멍을 내 노출한 티셔츠 등은 남성적 섹시함보다는 여성적인 노출의 미학을 만들어냈다.

캘빈 클라인은 이번 컬렉션부터 디자인에서 손을 떼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배턴을 물려받은 디자이너 이탈로 주첼리는 블랙과 화이트를 세련되게 매치한 지극히 ‘캘빈 클라인적인’ 쇼를 선보이면서 진 재킷, 굵은 바둑판무늬 셔츠 등으로 서부적인 멋을 냈다.

펜디의 디자이너 실비아 펜디는 쇼 직전 백스테이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제임스 딘의 다소 반항적이지만 기품 있는 모습, 1950년대 영화처럼 빛이 바랜 듯한 자연스러운 파스텔톤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모델들은 밀짚으로 만든 카우보이모자, 부드러운 가죽과 스웨이드로 만든 조끼를 선보였다.

쇼 직전이면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백스테이지를 펜디는 이례적으로 일부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힙합 바지에 구겨진 아디다스 티셔츠를 입고 오순도순 둘러앉아 장기를 두거나 실없는 장난을 치던 앳된 얼굴의 10대 모델들이 불과 10분 뒤에 스웨이드 정장차림에 밀짚모자를 쓰고 귀족처럼 기품 있는 미소를 지은 채 무대로 미끄러져 나왔다.

● 50년대와 레트로 레저

남성 패션 아이템에서 50년대풍은 엉덩이를 겨우 덮을 듯 짧고 허리선이 살짝 들어간 재킷, 패드를 넣어 어깨를 둥글게 처리한 블루종 등으로 꼽을 수 있다. 페이즐리나 튀지 않는 체크무늬 패턴, 잔잔한 꽃무늬처럼 ‘향토적인 멋’도 50년대풍의 한 지류다. 지그재그 무늬의 니트로 유명한 미소니는 카프리섬 해변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는 50년대 남성의 모습을 염두에 둔 듯 밝은 오렌지색의 크기가 넉넉한 수영복을 선보였다.

‘레트로 레저(retro-leisure)’는 테니스복처럼 짧고 몸에 딱 달라붙는 스타일의 반바지, 몸에 꼭 맞지만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다른 색의 두 가지 옷감을 덧댄 고급스러운 셔츠, 촘촘한 그물로 짠 조끼, 브랜드 로고나 패턴이 박힌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방법으로 스타일링됐다. 고급 사교클럽에서 걸어 나온 듯한 모델들의 모습은 펜디, 구치, 디스퀘어드2, 프라다 등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주머니가 많고 디자인이 복잡한 ‘유틸리티 팬츠’나 밀리터리풍이 사라진 대신 선이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이 주류를 이뤘다.

전반적인 트렌드를 확인하는 것과는 별도로 패션 컬렉션의 재미는 쇼 자체를 즐기는 데 있다.

베르사체의 쇼장은 입구에서부터 코끝을 찌르는 향(香)냄새와 배경음악으로 깔린 관능적인 마돈나의 목소리 때문에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모로코와 할리우드를 주제로 화려한 원색의 캐주얼 의류가 선보인 베르사체의 쇼에서 단연 눈길을 끈 아이템은 디자이너 자신의 얼굴을 만화처럼 표현한 팝아트적인 셔츠.

돌체앤드가바나는 흑인 여가수 조슬린 브라운이 무대 한가운데서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가운데 쇼를 진행했다. 평론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쇼는 좋았지만 옷은….’

● 베컴 뺏기

이탈리아 현지 언론이 주목한 컬렉션 최대의 가십은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을 놓고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돌체앤드가바나가 벌인 공방이었다.

베컴의 광적인 팬인 두 디자이너, 돌체와 가바나는 베컴의 현 소속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상징하는 빨간색 티셔츠에 베컴의 등번호 ‘7’을 달고 헐렁한 청바지를 입은 남성 모델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쇼를 시작했다.

쇼 직전 이탈리아 언론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디자이너 도메니코 돌체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영국 국가대표 축구팀을 위해 디자인한 재킷에 대해 “베컴은 그 옷을 한번도 입지 않았다. 그는 우리 옷만 입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질세라 아르마니측은 “베컴은 아르마니와 오랜 친구이며 그가 아르마니 옷을 입은 사진도 많다”고 맞받아쳤다.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 ‘라 가제타 델로 스포츠’는 “어쨌든 베컴은 곧 흰색 유니폼을 입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것이며 ‘7번’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그 빨간 티셔츠는 태어나자마자 ‘빈티지’가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전반적으로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의상보다 실용적이고 미니멀한 스타일의 옷이 크게 늘어난 것, 스타 하나를 두고 거물 디자이너들이 다소 유치한 공방을 벌이는 것 모두 어려운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지적됐다.

‘패션쇼’의 세계는 화려하지만 ‘패션 경제’의 현실은 가혹하다.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불황에 밀라노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시즌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에는 54개 브랜드가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49개로 줄었다.

AFP는 지난 한 해만 이탈리아 패션업계에서 3만8000명이 실직했으며 해외수출도 5.3%포인트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베르사체는 지난해 580만유로의 순손실을 기록한 뒤 구조조정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패션계의 불황은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견된다.

(사진=AP·로이터뉴시스·퍼스트뷰코리아

도움말=퍼스트뷰코리아 류민화 컨설턴트)

밀라노=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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