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어군탐지기에 녀석들의 움직임이 잡혔다. 문섀도호의 선미까지 바짝 따라붙은 돌고래들이 미끈한 몸체를 물 위로 드러내자 관광객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진다. 6월9일, 3일간의 연휴를 맞아 시드니와 브리즈번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은 돌고래와의 숨바꼭질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주 포트 스테판(Port Stephens) 넬슨베이(Nelson bay). ‘Dolphin Capital of Australia’로 불리는 넬슨베이는 돌고래의 천국이다.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 돌고래들의 이동경로가 포트 스테판의 앞바다이기 때문이다. 돌고래와의 만남이 다소 단조롭더라도 이를 입 밖에 내는 것은 금물이다. 주민들에게 돌고래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넬슨베이 주민과 돌고래의 관계는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넬슨베이 주민들에게 돌고래는 친구이자 가족이다. 넬슨베이의 아침은 돌고래의 괴성과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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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0만명, 전남 목포시 크기의 포트 스테판의 얼굴은 ‘자연’이다. 이곳에는 높은 빌딩도, 교통체증도 없다. 대신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과 공기, 눈부신 태양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어디를 가도 넓은 목장과 초지가 있고 그 속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염소가 장관을 이룬다. 그래서 포트 스테판은 도시라기보다 작은 시골마을 같다. 소와 양을 키워온 이곳은 초기 호주의 외화벌이에 일익을 담당한 곳이다.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유자적한다. 그런 삶의 여유는 자연과 호흡하는 생활의 산물로 보인다. 200여km 떨어진 곳에 시드니의 도시문명이 웅크리고 있지만 이를 철저히 거부한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가 인공미의 결정체라면 포트 스테판은 자연미의 대명사다. 시드니나 골드코스트가 복합적인 다민족 문화를 토대로 형성된 대형도시라면, 포트 스테판은 호주의 과거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잠자는 도시’다. 신(神)이 호주 대륙에 준 갖가지 혜택을 골고루 누리는 축복의 땅이라는 자부심은 지금도 포트 스테판 주민들 가슴속에 살아 숨쉰다.
‘넬슨베이’는 돌고래 천국으로 명성
포트 스테판은 또 해양도시다. 굴곡이 심한 해안선을 따라 넬슨베이, 핀갈베이(Fingal Bay), 살라만더베이(Salamander Bay), 레몬트리 길(Lemon Tree Passage), 아나베이(Ana Bay) 같은 세계적인 해변이 자리잡고 있다. 호주 정부는 포트 스테판의 해변을 ‘Blue Water Paradise’로 명명했다. 차 정원이나 와인농장도 포트 스테판의 일상과 밀접하다. 신은 포트 스테판에 태초의 원시림도 선물했다. 유칼립투스 우거진 원시림에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공룡이 뛰쳐나올 것 같은 전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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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스테판 주민들은 이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포트 스테판 주민들은 이런 자연환경을 벗삼아 넬슨베이에 또 다른 동화 속 도시를 건설하려 한다. 이른바 ‘홀리데이 파라다이스’다. 자연을 동경하는 사람, 현실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포트 스테판은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포트 스테판 행정당국은 그동안 자연 속에 묻어두었던 바다와 사막, 밀림 등 포트 스테판의 속살을 부끄럼 없이 드러낸다. 속살이 갖는 본질적 중독성은 시드니 브리즈번 등 인근 대도시로 퍼져, 휴일이면 포트 스테판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요트를 매단 승용차가 줄을 잇는다. 시드니와 포트 스테판을 오가며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는 김일환씨(시드니 공과대학)는 “골드코스트 등 호주의 유명한 관광지를 찾던 사람들이 요즘 포트 스테판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잊고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것이 그 이유. 어딜 가나 공원이고 숲인 호주지만 포트 스테판은 그런 호주 속에서도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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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스테판은 이들에게 해변가의 캐빈에서 호화로운 해상콘도, 리조트, 홀리데이 하우스(렌트하우스)까지 다양한 숙박시설을 제공한다. 이 가운데서도 홀리데이 하우스는 특별하다. 해변가에 야트막한 별장형 콘도가 있다면 홀리데이 하우스로 보면 틀림없다. 주말이면 수천 채의 홀리데이 하우스는 파라다이스를 찾아 먼 길을 찾아온 이방인들로 가득 찬다.
천국으로 가는 포트 스테판의 첫번째 계단은 ‘넬슨베이’다. 넬슨베이의 바다 색깔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그 위에 흰 돛을 단 요트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박해 있다. 대부분 개인 소유로 주말이면 근해를 하염없이 떠다닌다. 낚시를 하거나 스킨스쿠버를 하거나 모두 자유다. 때로는 가족들이 배를 타고 하룻밤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넬슨베이의 마스코트인 돌고래와 조우할 수도 있다. 넬슨베이 주민들은 돌고래를 보면 행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넬슨베이는 개발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한다. 경제논리로만 본다면 납득이 가지 않지만, 아직까지 상업적인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장점이라고 포트 스테판 주민들은 믿고 있다. 포트 스테판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스톡턴비치(Stockton Beach)도 포트 스테판의 매력을 대변한다. 40km나 이어진 스톡턴비치는 아직도 태초의 모습 그대로를 수줍게 간직하고 있다. 해변을 걷노라면 남태평양의 웅장한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해변에는 마치 백색가루가 뿌려진 것처럼 고운 모래언덕이 무려 30km나 동행한다. 티나터너가 주연한 영화 ‘매드맥스’ 촬영팀이 이곳에서 수개월을 머물며 모래사막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다고 한다. 파도에 실려 온 바닷모래는 해마다 모래언덕을 내륙으로 50cm씩 확장한다. 그 모래언덕 위에는 샌드보드와 낙타투어 등 온갖 모험이 펼쳐지는 동화 속 나라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자연을 훼손하는 고정 시설물은 아무것도 없다. 사륜구동을 타고 모래언덕을 탐험하거나 샌드보드를 타는 등 친환경적 레저를 즐기기 위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다. 거센 바닷바람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금세 지워버리며 자연의 힘을 웅변한다.
포트 스테판의 여정은 동적(動的)이다. 페이퍼박 나무로 둘러싸인 호수는 펠리칸, 바다독수리 같은 동물들의 은신처다. 그들과 대화 나누는 것에 싫증이 나면 낚시와 카누, 파도타기를 즐기면 된다. 그마저도 지겨우면 곳곳에 마련된 골프장에서 땀을 흘리면 된다. 포트 스테판에 위치한 호리즌 골프 클럽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포트 스테판의 자연은 무엇을 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포트 스테판 주민들이 더 까탈스럽다. 스톡턴비치는 조개들의 천국이다. 얼마 전까지 이곳을 방문한 휴양객은 제한적이나마 조개를 잡아 먹었다. 그러나 최근 조개군(群)이 파괴되는 현상이 뚜렷해지자 포트 스테판 행정당국은 ‘잡는 재미’까지만 허용하고 ‘먹는 재미’는 제한했다. 스톡턴비치에서 잡은 조개는 다시 해변에 던져야 한다. 이를 어기면 수백 달러의 벌금이 뒤따른다. 포트 스테판 행정당국은 최근 이곳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후문이다. 레이먼드 테라스에 위치한 포트 스테판의 관리본부는 넬슨베이 핀갈베이 카루아 퍼른베이 등의 각종 숙박업소와 관광안내를 책임진다.
포트 스테판을 대표하는 요리로는 랩스터, 굴 요리가 으뜸이다. 포트 스테판 주민들은 바닷가 혹은 목장에서의 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운타운의 식당가로 몰려 싱싱한 해산물을 즐긴다. 바삭바삭하게 튀긴 새우와 바닷가재 요리는 바닷바람에 시달린 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도 남는다. 때때로 인근 목장에서 길렀을 소는 연한 스테이크로 변해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우기도 한다. 맥주 잔이 돌면 식사자리는 장기전으로 돌입한다.
쇼핑을 원한다면 넬슨베이 살라만더베이 쇼핑센터를 찾으면 된다. 200여년 전 죄수들이 지은 아름다운 건축물도 관심을 갖고 살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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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호흡하며 하루하루를 여유롭게 보내는 그들에게 아픈 과거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포트 스테판에도 피의 역사는 존재한다. 1770년 5월 제임스 쿡 선장이 처음 이곳 땅을 밟으면서 포트 스테판의 비극은 시작된다. 제임스 쿡 선장은 보좌관인 필립스테판 공을 기념하여 이곳의 이름을 ‘포트 스테판’으로 명명했다. 원주민인 ‘오리미족’은 뒤를 이어 영국에서 온 이주민들과 생활 근거지를 놓고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인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미국과 호주 군인의 훈련기지로 활용되면서 긴장감이 도시를 감싸기도 했다. 한때 일본의 침략에 대비, 방어막을 구축한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포트 스테판 주민들은 이 아픈 과거사를 뒤로 하고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꿈꾼다. 그들은 지구상에 남을 마지막 자연이 포트 스테판에 위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의 주장처럼 신은 지금도 포트 스테판을 주시하는 것일까.
▼Tips / 여행정보▼
볼거리
# 돌핀 크루즈(dolphin cruise)
포트 스테판의 최고 자랑거리. 200여 마리에 달하는 야생 돌고래가 근해에서 365일 넬슨베이 주민들과 함께 호흡한다. 유람선에 탑승하면 1시간30분 정도 크루즈를 한다. 문섀도호 마크 선장이 “원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 한 마리는 보여준다”고 장담할 정도로 인간과 돌고래는 호흡이 잘 맞는다. 골드코스트의 ‘시월드(Sea World)’가 길들여진 돌고래들의 쇼를 보여준다면 이곳에서는 야생 상태의 돌고래를 볼 수 있다. 배의 진행 속도와 보조를 맞추며 춤을 추듯 뒤따르는 돌고래의 모습이 장관이다. 매년 1500회 정도 크루즈 일정이 잡혀 고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
# 스톡턴비치와 모래언덕
스톡턴비치와 모래언덕의 길이는 40여km에 이른다. 모래언덕에 오르면 남태평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륜구동차에 탑승, 사막투어(4 Wheel Drive Desert Tour)에 나선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잡아야 한다. 경사진 언덕을 달리기도 하고 웅덩이 물을 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래썰매(sand boarding)는 빼놓을 수 없는 재밋거리. 100m 높이의 모래언덕을 12~13초 만에 내려간다. 놀이공원의 눈썰매장과 비슷하지만 경사가 70~80도에 가깝다. 낙타 타기(Camel Ride)도 즐길 수 있다.
# 호주 전통 와인농장 방문 및 시음
포트 스테판의 헌터밸리(Hunter Valley)는 호주 와인의 메카. 남부 프랑스의 기후, 지질, 지형과 흡사한 현지 자연환경이 포도농장의 출발점. 이민 온 유럽인들이 대규모 와인농장지대를 건설했다. 약 35에이커(약 4만3000평) 크기. 샤도네, 포트앤 머스켓 등 유수의 브랜드 와인을 생산한다. 포도농장 견학과 무료시음 기회를 제공하는 농장을 찾으면 수십 가지의 포도주를 무료로 맛볼 수 있다.
# 포트 스테판으로 가는 길
매일 시드니 에디애버뉴에서 포트 스테판으로 가는 버스가 운행된다. 200km로 약 2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차로 이동할 경우 F3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된다. 버스요금은 편도가 25호주달러(1호주달러, 한화 약 800원)이고 왕복은 40호주달러. 뉴캐슬에서도 포트 스테판까지 버스가 운행되며 요금은 7.6호주달러다. 거리는 약 50km(45분 소요). 뉴캐슬까지 기차를 타고 거기서 포트 스테판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방법도 있다.
숙박
# 페퍼스 앵커리지(Peppers Anchorage) 리조트
대표적인 숙박시설은 ‘홀리데이 하우스’(www.peppers.com.au)다. 홀리데이 하우스의 내부구조는 우리나라 콘도와 유사하다. 1일 렌트비는 150~200호주달러. 홀리데이 하우스의 위치에 따라 전망이 달라지므로 예약시 유의해야 한다. 이 밖에 아파트먼트나 리조트도 이용할 수 있다. 포트 스테판의 대표적인 리조트는 ‘페퍼스 앵커리지’다. 천혜의 환경 속에 위치한 이 리조트는 동화 속에 나오는 작은 마을과 흡사하다. 건축양식이 가장 호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어느 방을 선택하든 커튼을 걷으면 남태평양의 푸른 바닷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리조트 내에 있는 수영장, 사우나, 체육관 등 갖가지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글·사진/ 포트 스테판=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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