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터키 이란 메소포타미아 등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이웃사촌이었던 풍경화가 야콥 브래클레와 교류하면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노자사상에 심취해 소박하면서도 탈속한 삶을 살고 있던 브래클레의 영향을 받아 화가가 될 생각도 했지만, 이른바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작품보다 자유로운 생활방식만을 추구하는 이중성에 실망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로 진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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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의학공부를 하면서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의학 수업에 대한 염증과 생과 사가 난무하는 병원이라는 현장은 오히려 그의 관심을 삶의 본질적인 고민으로 이끌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마친 뒤 의대와의 인연을 접은 그는 남인도를 여행하면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첫 작품을 만든다. 커다란 검은 돌을 망치와 끌을 이용해 달걀 모양으로 조각한 ‘브라만다’를 시작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 스물일곱살 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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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그의 작품은 미술작품의 정형에서 한참 비켜나 있다. 노란 꽃가루를 바닥에 뿌려놓거나 작은 산처럼 쌓는다든지(작품명 꽃가루), 넓은 대리석 판에 홈을 파 우유를 부어 놓는다든지(우유 돌), 밀랍으로 만든 직육면체를 탑처럼 쌓아 놓거나(지구라트), 대리석으로 작은 집 모형을 만든 뒤 주변에 쌀을 뿌리는 등(쌀 집), 얼핏 낯설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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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쓰는 재료와 표현은 모두 동양적 사유의 물화(物化)다. 자연의 조화와 질서에 주목하고 우주의 모든 요소들을 전체의 한 부분으로 보는 그의 일관된 작업 화두는 ‘통로와 이행’이다. 개인전 제목이기도 한 이 화두는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의 이행’이다. 그의 작품을 ‘통로’로 해서 말이다.
작가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은 동과 서라는 이질적인 시공간일 수도 있고 삶과 죽음일 수도 있으며 물질과 영혼일 수도 있고 안주와 떠남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조형적 소재로 선택한 배(船), 집, 무덤이 죽음이며 영혼이며 안주의 상징이라면 자연에서 얻는 천연 재료인 꽃가루, 우유, 쌀, 밀랍 등은 삶이며 물질이며 떠남의 상징들이다.
전시차 방한한 그를 만나, 다짜고짜 ‘예술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온화한 미소와 낮은 목소리로 “내게 있어 예술은 수행이자 명상”이라고 대답했다. 엄격한 채식주의를 고집하고 집안에서도 모든 가구를 없애고 바닥에서 생활한다는 그에게 삶과 예술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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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카셀 도큐멘타전과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에 참가한 뒤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그는 시카고 현대미술관(1989), 퐁피두센터(1992)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00년부터 올 1월까지 미국과 독일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국내에는 1997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고 최근 삼성미술관의 ‘마인드 스페이스’ 전에서 밀랍방을 선보였다. 9일부터 9월12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최초의 개인전에는 대표적인 입체작품들부터 사진 드로잉까지 망라되어 1970년대 이후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02-2188-6000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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