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64…아메 아메 후레 후레(40)

  • 입력 2003년 7월 10일 18시 27분


“다음 역은 봉천역입니다. 연경선(連京線)을 이용하실 분은 이번 봉천역에서 갈아타 주십시오. 대석교 방면은 11시39분 완행열차, 대석교에서 대련 방면은 13시47분발 급행열차가 있습니다. 긴 여행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뽀-뽀-! 기적이 여객 전무의 목소리를 지웠다. 쉭 쉭 쉭 쉭 칙 칙 칙 칙, 기관차는 속도를 높여 언덕을 오를 채비를 하고는 단숨에 경사진 선로를 달려 올라갔다. 소녀는 흰색, 회색, 쥐색, 검정색으로 변화하는 연기를 관찰하면서 불타는 아궁이 안에 열심히 석탄을 퍼 넣을 기관 조수의 새카만 얼굴을 상상했다. 출발할 때하고 언덕길을 오를 때는 석탄을 넣기 때문에 시커먼 연기가 나온다고 그랬지, 물어보길 잘 했지, 용기가 좀 필요하기는 하지만 용기를 낸 만큼 똑똑해지니까. 연기는 점점 더 시커메지고 쉭 쉭 쉭 하고 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덜커덩거리는 객차 소리는 남의 일처럼 한가로웠다. 기관차는 지금 있는 힘을 다해 분투하고 있겠지, 굴뚝은 불똥을 뿜어내고, 한여름이니까 괜찮지만 한겨울 같으면 마른풀에 불똥이 튀어 불이 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일 없으려나? 아아, 차장이 있으면 이것저것 물어볼 텐데. 여덟량이나 끌고 가야 하니 파시로, 숨을 헉헉거리고 있을 거야, 한량만 끌고 달리고 싶겠지, 이런 정도 속도면 우근씨하고 경주해 봐야 질 게 뻔하지. 소녀는 쉭 쉭 거리는 증기음 소리에서 우근의 숨소리를 들었다, 쉭 쉭 쉭 쉭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쉭 쉭 쉭 쉭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언덕을 다 올라간 ‘대륙’은 자기가 토해낸 연기와 증기를 휘감아 올리며 급행다운 속도로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갔다. 안 돼! 그렇게 속도 올리면! 우근씨가 못 따라오잖아! 제일 마지막 전망차와 사이가 벌어지고, 우근씨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면서…하얀 러닝셔츠가 안녕이라고 흔드는 손수건처럼…. 하지만 그 사람은 달릴 거야, 연기 냄새와 덜커덩거리는 객차 소리를 따라 달린다, 달린다, 달린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칙 칙 칙 칙… 아이 참 내, 또 엉뚱한 공상만 하고 있네…. 계속 연기와 함께 여행하고 있어서 현실감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 어디쯤에서 현실에 발을 디딜까? 어떤 현실에? 이제 조금만 있으면 봉천이지, 이 열차하고도 안녕이야.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