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절간 이야기 3’(고요아침) 중에서
자박자박 발목에 설 언 눈발 밟힐 즈음, 나박나박 묵채 쳐넣고 숭숭숭 김치 얹어 후루룩 텁텁 묵사발 어르던 생각 절로 난다. 불쌍한 다람쥐 문상은커녕 군침 삼킬 계제는 아닌 듯싶어 저 얘길 곱씹나니 일변 목이 메고 일변 목구녕 간질간질하는 게 저 석불이나 한 가지라. 우는 입 따로 있고, 웃는 입 따로 있을까, 사는 게 웃다가 통곡하는 일이 다반사일 테지만 석불 심사를 좀 알겠다. 아낙들 사금파리에 콧마루 닳는 게 아프기도 아프겠지만 동네 애들 절반은 제 자식이니 절로 웃음이 나올 터. 근본 좋으니 마을 자손들 쉬 성불하겠구먼 그랴. 다람쥐 주제에 부정축재도 유분수지, 웬 호화돌담 속에 도토리가 한 가마랴? 한술 더 뜬 저 늙은이 천 년 단식째인 목불 핑계로 제 입에 몽땅 털어넣으니 틀니 놓친 잇몸뿐이래도 오지게 맛도 맛있을사. 이십 년 수행에 늙기도 설늙었구나, 욕하려니 문 밖이 소란하다. 이크 내 고무신! 내가 걸친 입성, 내가 먹는 밥, 내가 앉아 허튼 소리 하는 이 방구들도 무수한 곤충과 새들과 다람쥐의 보금자리 아니던가? 허, 말 전하는 저 노인네 두루적막은커녕 쭈그러든 입시울에 피는 입담 한 자락, 젖은 개 몸 털듯 흐드러지니 탁주 없이 묵사발만 기울여도 취하는구나.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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