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나는 시]조오현 '절간 이야기 3'

  • 입력 2003년 7월 11일 17시 43분


《아득한 옛날의 무슨 전설이나 일화가 아니라 요 근년에 비구니스님들이 모여 공부하는 암자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물론 숲속에 파묻힌 돌담 주춧돌도, 천년 고탑도 비스듬한 그 암자의 마당에 들어서면 물소리가 밟히고 먹뻐꾹 울음소리가 옷자락에 배어드는 심산의 암자이지요. 그 암자의 마당 끝 계류가에는 생남불공(生男佛供) 왔던 아낙네들이 코를 뜯어먹어 콧잔등이 반만큼 떨어져나간, 그래서 웃을 때는 우는 것 같고 정작 울 때는 웃는 것 같은 석불도 있지요. 어떻게 보면 암자가 없었으면 좋을 뻔했던 그 두루적막 속에서 20년을 살았다는 노비구니스님이 그해 늦가을 그 석불 곁에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자기의 그림자를 붙잡고 있을 때 다람쥐 두 마리가 도토리를 물고 돌담 속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옳거니! 돌담 속에는 도토리가 많겠구나. 묵을 해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먹어야지.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중얼거린 노비구니스님이 돌담을 허물어뜨리고 보니 과연 그 속에서는 도토리가 한 가마는 좋게 나왔지요. 그런데 그 한 가마나 되는 도토리를 몽땅 꺼내어 묵을 해 먹었던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놈의 다람쥐 두 마리가 노비구니스님의 흰고무신을 뜯어먹고 있었답니다. 그 흰고무신을 뜯어먹다가 죽었답니다.》

■시집 ‘절간 이야기 3’(고요아침) 중에서

자박자박 발목에 설 언 눈발 밟힐 즈음, 나박나박 묵채 쳐넣고 숭숭숭 김치 얹어 후루룩 텁텁 묵사발 어르던 생각 절로 난다. 불쌍한 다람쥐 문상은커녕 군침 삼킬 계제는 아닌 듯싶어 저 얘길 곱씹나니 일변 목이 메고 일변 목구녕 간질간질하는 게 저 석불이나 한 가지라. 우는 입 따로 있고, 웃는 입 따로 있을까, 사는 게 웃다가 통곡하는 일이 다반사일 테지만 석불 심사를 좀 알겠다. 아낙들 사금파리에 콧마루 닳는 게 아프기도 아프겠지만 동네 애들 절반은 제 자식이니 절로 웃음이 나올 터. 근본 좋으니 마을 자손들 쉬 성불하겠구먼 그랴. 다람쥐 주제에 부정축재도 유분수지, 웬 호화돌담 속에 도토리가 한 가마랴? 한술 더 뜬 저 늙은이 천 년 단식째인 목불 핑계로 제 입에 몽땅 털어넣으니 틀니 놓친 잇몸뿐이래도 오지게 맛도 맛있을사. 이십 년 수행에 늙기도 설늙었구나, 욕하려니 문 밖이 소란하다. 이크 내 고무신! 내가 걸친 입성, 내가 먹는 밥, 내가 앉아 허튼 소리 하는 이 방구들도 무수한 곤충과 새들과 다람쥐의 보금자리 아니던가? 허, 말 전하는 저 노인네 두루적막은커녕 쭈그러든 입시울에 피는 입담 한 자락, 젖은 개 몸 털듯 흐드러지니 탁주 없이 묵사발만 기울여도 취하는구나.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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