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의 예술가들은 술과 관련된 각자의 상상력과 체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내놓았지만 술을 통한 절절한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다.
박영균은 텅 빈 커다란 소파가 있는 거실 한 구석 화장실에서 토악질해대는 남자를 그렸다. 작가 특유의 화려한 색채감각에 유머러스한 상황 설정에서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일러스트 조각 스타일의 인물형상을 선보여 온 김성복은 거품이 휘날리는 맥주병을 타고 오르는 인물을 석고로 만들었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작가 자신의 삶을 엿보는 듯해 웃음이 나온다.
방정아의 ‘취무(醉舞)’는 불콰하게 취기가 오른 채 담요 한 장 뒤집어 쓰고 흡사 남극이나 북극의 빙하를 걷는 듯한 남자를 그렸다. 평소 반듯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들이 일탈의 통쾌함을 느끼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취중에 뒤틀린 세상의 모습을 그린 이종빈의 ‘취중 파노라마’, 얼굴도 손도 없는 두 사람이 까만 연기가 올라오는 고기불판을 가운데 놓고 벌이는 술자리에 소주잔이 둥실 떠 있는 소윤경의 ‘연기’도 재미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유혹’, ‘해방’, ‘중독’이라는 세 가지 주제 아래 회화 11점, 입체 4점, 설치 2점 등이 선보인다. 전시장 입구에 술을 비치해 놓아 관람객들이 가벼운 음주 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점도 눈길을 끈다. 02-736-437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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