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쪽 2만3000원 까치
2003년은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발견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자, 때맞춰 인간 유전체 서열 분석이 완료된 해이기도 하다. 50년 전 24세의 나이로 분자생물학 발전의 중심에 서 있던 저자 제임스 잡슨이 올해 이 책을 펴낸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그는 분자생물학에 관련된 폭넓은 주제들과 그 발전과정, 그리고 그 중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21세기의 주역인 DNA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해 온 잡슨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DNA 총론’이다. 저자는 유전학의 발전사를 상세히 전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DNA야말로 유전의 비밀을 숨긴 물질’이라는 결론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유전학의 이름을 빌린 ‘사이비 과학’이 인류의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다. 유전학에 대한 무지는 ‘우생학’(유전 법칙을 이용해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을 낳았고, 이로 인해 야기된 나치의 우생학은 유대인 대학살의 동기가 됐다는 점 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의 시선을 가장 끄는 부분은 DNA의 이중나선이 발견되기까지 학자들이 벌인 숨 막히는 경쟁이다. 최후의 승리자는 결국 이 책의 저자인 잡슨과 동료인 프랜시스 크릭이었다.
그들은 “무엇이든 단순하면서 우아한 것은 옳은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과학사상의 핵심적인 직관과 진실을 담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중나선 발견 이후 20년 동안 유전자 기능의 기본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벌인 학자들의 노력을 마치 드라마 또는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내 더욱 흥미를 끈다. 많은 유전자들은 오직 특정한 세포에서 특정시기에만 활동한다.
학자들의 노력 결과 유전자들의 ‘활동 스위치’가 어떻게 켜지는지를 밝힌 점은 DNA 연구에 있어서 일종의 혁명이었다. 인간이 DNA를 마음대로 재조합할 수 있는 방법이 탄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상아탑에서 벗어나 ‘생명공학 산업’의 주체로 등장하게 됐다. 과학자들은 이제 ‘특허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좋은 착상이란 결국 기나긴 과학적 탐구의 시작에 불과하다. 생명공학의 길은 여전히 멀다. 과학자들의 이런 모험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질병과 식량문제, 그리고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유전자 사냥’은 현재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암, 유전병, 유전자 조작 농업, 유전자 지문을 통한 범죄수사 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편 생명산업에 대한 연구는 이 연구가 인간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을 제기하는 반대 운동에 맞닥뜨리고 있기도 하다. 생명산업 연구 반대 운동론자들의 음울하고 파멸적인 시나리오에 대해 저자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라는 의견을 여러 차례 표명하고 있다. 그의 과학에 대한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이 아니라 과학적인 관점에서 생명공학에 대한 문제를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의 저자가 쓴 책들이 인간 게놈에 대한 연구에만 치중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무엇이 우리를 생물학적으로 ‘다른 종’과 갈라놓는지에 대해 중요한 설명을 내놓는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천성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론을 반박한다. 인간이 노력에 의해 크게 변화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간의 재능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선천적 능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은 최근의 여러 객관적 검증을 통해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인간 행동에 유전적 요소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을 창조적이고 지배적이며 아울러 파괴적인 존재로 만든 것이 바로 DNA라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도 유전자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그는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있다.
원제 ‘DNA’(2003).
홍영남 서울대 생명과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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