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 박봉구’의 타이틀 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은표씨(37)가 맡았다. 치열한 삶의 열정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바꿔 이야기하는 그가 아니었다면 이 연극은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다. 고향이 전남 곡성이어서 전라도 사투리로 이어지는 대사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의 삶도 어딘지 박봉구와 닮은 듯하다.
“박봉구와 제가 비슷한 점이 있다면 ‘고집’이겠죠. 이발사 박봉구는 돈도 되지 않는 이발 기술을 끝까지 지키려 하지요. 제가 연극하겠다고 85년에 상경해서 갖은 어려움을 견디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고집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이발사가 꿈이었던 박봉구는 고교시절 실수로 사람을 가위로 찌르고는 11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후 감옥에서 다듬은 이발 기술을 마음껏 펼쳐보려고 하지만, 그가 취직한 곳은 퇴폐 영업을 하는 이발소였다. 척박한 사회 어디서도 자신의 기술을 펼칠 수 있는 곳은 없다는 사실을 안 박봉구는 결국 좌절하고 만다.
“스스로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내가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가, 꿈을 버리고 살고 있는가 하는 고민이죠.”
오랫 동안 배고픈 연극배우 생활을 견뎌냈던 그가, TV나 영화를 통해 ‘뜨고’ 나서도 여전히 연극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내 꿈은 연극배우였다”고 말했다.
‘이발사 박봉구’는 개인적으로도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노총각 꼬리표를 뗐다.
“제가 ‘꼬임’을 당한 거죠. 지난해 공연 끝나고 (아내가) 사인을 받으러 오면서 알게 됐어요. 그 다음엔 자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보내오고, 저도 호감이 가고 그래서…. 뭐 그러다가 6개월도 안 돼 결혼하게 됐지요.”
지난해 11월 결혼한 그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 옆 자리에 있던 동료가 “너무 다정한 부부”라는 말을 하자 그는 “나이차도 열두살밖에 안 나는데, 뭐 그렇지”라며 웃었다. 체중이 10kg이나 불어 고민했던 것 빼고는, 결혼해서 나쁜 점이라곤 없단다.
“박봉구라는 인물이 너무 살찌면 안 어울리거든요.”
그래서 이번 공연을 앞두고 4kg을 뺐는데, 막이 오른 뒤 4kg이 더 빠져 자연스럽게 ‘이발사 박봉구’로 변신했다.
8월 31일까지 공연. 화∼금요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4시, 7시30분. 일요일, 공휴일 오후 4시30분. 1만5000∼2만5000원. 02-762-0010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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