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연인의 사랑, 도깨비들의 장난, 환상적인 숲의 낭만, 꿈과 현실의 혼돈….
여름 공연가의 단골 레퍼토리인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이 양정웅의 각색과 연출을 통해 한국적인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국악의 선율과 전통 소재의 의상을 이용했다고 해서 꼭 한국적인 것만도 아니다. 국적을 뛰어넘으며 꾸준히 새로운 연극의 스타일을 실험하고 있는 연출가 양정웅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앵글로색슨의 냄새를 쏙 빼낸 후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소재들을 최대한 활용해 셰익스피어가 전하고자 했던 인간들의 순수한 꿈과 사랑을 그려냈다.
2002년 경남 밀양연극촌의 ‘숲속 극장’에서 공연돼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숲’이라는 천혜의 낭만적 무대를 떠나 대학로의 아담한 소극장에서도 그 꿈을 펼치는 데 성공했다. 무대를 바라보면 이 한 편의 연극이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기까지 바쳐진 여러 사람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돋보인다. 음악과 분장을 비롯해, 한국 전통의 소재와 양식, 색감을 활용한 이명아의 의상, 깔끔한 한옥방 같은 공간으로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 이윤수의 무대미술, 전통 가락과 춤을 활용해 흥을 돋우는 박영애의 안무. 다양한 요소들은 나름의 분명한 특색을 드러내면서도 한데 어우러져 한 여름 밤의 몽환적 무대를 만들어낸다. 특히 정해균 김은희 정새결을 비롯한 아홉 연기자들의 고른 연기는 어느 한 순간, 한 동작, 한 대사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관객들을 즐겁게 만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도깨비들의 장난 사이에서 이 연극의 주요 주제인 네 연인의 사랑과 갈등이 지나칠 정도로 희화화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등장인물 익(김은희 분)이 능숙한 연기로 지탱해 주기는 하지만 사랑의 도주를 택한 젊은 연인 항(전중용 분)과 벽(김지성 분)의 사랑은 과도하게 희화화된 극의 흐름 속에서 빛을 잃고 만다. 재미를 좇다가 사랑의 감동을 소홀히 다루는 것은 ‘한 여름 밤의 꿈’을 연출할 때 흔히 범하는 실수다. 하지만 서로의 사랑에 몰입하는 연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과 뭉클함을 동시에 느끼는 경험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에서 놓치기 아까운 감동이다.
27일까지. 화∼금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반 7시반, 일 4시반. 리듬공간 소극장. 02-762-0810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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