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센강이 해변으로 변했다고 한다. 파리시가 휴가를 못 떠난 ‘일부’ 가엾은 파리지앵을 위해 강변에 모래를 붓고 야자수까지 심었다는 것이다. 마음만이라도 지중해의 푸른 바닷물을 시선 가득히 들이붓고 싶다는 상상력의 발로일 것이다.
‘카르멘’의 작곡가 조르주 비제도 짧은 로마 유학생활 외에는 평생 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는 지중해의 바다 냄새와 찬란한 햇살이 흘러넘친다. 그래서 휴가철에 벗 삼을 만한 음악을 고르는 데 비제의 작품목록은 큰 도움을 준다. 프로방스 지방이 배경인 연극의 반주음악 ‘아를의 여인’이 그 대표적 작품이다. 마을의 종소리를 묘사한 ‘카리용(종·鐘)’이나 손북의 리듬이 인상적인 ‘파랑돌’ 등 전곡에서 지중해의 여름날을 느낄 수 있다. 원시시대 실론섬이 배경인 초기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도 멋지다. 유명한 테너 아리아 ‘귀에 들린 그대 음성’은 경음악단의 무드음악으로도 편곡돼 인기를 끌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그가 17세 때 쓴 교향곡 1번도 어디 하나 싹둑 잘라버릴 만한 군더더기를 찾을 수 없는 명작이다. 그 화사한 선율에서 어느 정도나마 ‘아를의 여인’의 기미를 엿볼 수 있다.
● 오르페우스실내악단 (1988·DG)
빠른 악장의 약동에서 청춘의 푸릇함을 느낄 수 있고, 느린 악장의 애절한 오보에 선율은 대기 중의 미풍 속에 한들한들 나부끼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도서관에서 잠자다 1935년에야 처음 연주됐다. 비제가 살아 있었다면 97세였을 것이다.
영국의 쾌활한 지휘자 토머스 비첨은 1961년 이 작품을 EMI사에서 음반으로 내놓았다. 오늘날에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큰 제약회사의 상속자였던 그는 독학으로 지휘를 익힌 뒤 자기 돈으로 악단을 조직해 지휘계에 데뷔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지휘에서 ‘아마추어리즘’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매끄러운 선율을 이끌어내거나 악기 사이의 미묘한 밸런스를 조정하는 데 특히 장기를 갖고 있었다. 화창하기 그지없는 이 연주에도 비첨의 특징이 반영돼 있다. 마침 ‘아를의 여인’ 모음곡도 함께 실렸다.
디지털 시대의 음반으로는 경영관련서에 ‘리더 없는 악단’으로 소개돼 각광받은 오르페우스 실내악단의 음반(1988·DG)이 있다. 일반적 오케스트라보다 훨씬 적은 인원을 사용해 말 그대로 실내악적인 투명한 앙상블을 이끌어냈다. 프로코피예프의 ‘고전 교향곡’ 등이 함께 실렸다.
샤를 뒤투아가 데카사에서 발매한 몬트리올 교향악단의 연주도 정묘한 앙상블을 자랑하지만, 녹음공간의 울림이 커서 산뜻한 맛이 덜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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