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박물관 9-조선생활관 1/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글 그림 사진/1만8000원 100쪽 사계절(초등 6년 이상)
책 속에 우리나라 각 시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박물관을 지어 ‘드나들도록 한’ 한국생활사박물관 제9권 조선시대 전기 편.
많은 경우 역사책이나 박물관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설책이나 영화관같이 상상의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서 의무감으로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사실 가득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한 영국 초등학교 고학년의 역사숙제가 이집트시대 신들의 모습 색칠하기여서 신선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튜더왕조를 배우면서는 그 시대 의상을 입고 연극을 하기도 했다. ‘기원전 2772년 이집트 태양력사용’을 열심히 외우는 우리의 역사교육과는 달랐다.
이 책 역시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내용의 수준으로 보면 청소년 이상이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역사를 가깝게 체험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에서 초등 고학년의 시간여행 안내서로도 무방할 듯싶다.
야외전시부터 둘러보자. 철거공사가 한창인 청계고가도로 옆 흥인지문을 지난다. 조선왕조의 동쪽 정문을 보며 조선은 언제나 우리 가까운 곳에 서 있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덕수궁에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펼쳐 조선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조선을 건국한 주체세력이 ‘지금 조선’의 하늘을 어떻게 보았을까 살피다 ‘전시실’이 아니라 ‘가상체험실’로 들어와 버렸다. 한양과 향촌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크, 세종대왕이 일식에 맞춰 ‘구식례’를 치르려다 예보가 빗나가자 이천봉에게 장형을 내린다. 중국의 역법에 따라 매기던 시간을 조선에 맞도록 빨리 바꿔야 한다. 이렇게 조선 초 다양한 천문기구를 제작하는 대규모 국가사업이 시작됐다. 세종은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들어 널리 백성을 위한 공공시계로 삼고자 했다. 여기에 숫자 대신 동물그림을 그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배려했다. 정말 왕은 백성들을 섬겼구나!
드디어 ‘조선실’에 들어와 유교적 이상 사회를 꿈꾸는 사대부들이 장악한 16세기 조선의 향촌사회를 마주한다.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에 자리 잡은 관가정 누마루에서 양반가의 생활을 살핀다. 물론 정자는 선비들의 차지였지만 양반가 여성의 삶이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얽매여 있지도 않았다. 신사임당은 혼인한 뒤 남편과 함께 친정에서 살았고 그녀가 죽은 뒤에도 남편은 새장가 갈 엄두를 못 냈다. 부모가 죽으면 딸 아들 구별 없이 고루 재산을 물려받고 제사도 돌아가며 지냈다. 당당했던 여성들 앞에 호주제는 명함을 내밀 수 없었다.
‘특별전시실’에서는 종묘제향을 재현했다. 일렬로 선 제관들의 모습이 양쪽 페이지에 걸쳐 나와 있고 그 페이지들을 다시 펼치면 네쪽 페이지에 ‘세계문화유산’인 종묘가 나타난다. 여기까지가 좋다. 그 뒤엔 종묘제례가 상징하는 유교정신의 진면목을 너무 시시콜콜 강조하느라 상상력이 숨쉴 여지를 빼앗아 지루함을 준다.
방학엔 바깥에서도 실컷 놀아야 하니 박물관 구경은 이제 그만. 내일은 다시 ‘조선실’에 들러 민촌의 생활을 살펴야겠다. 농민을 중심으로 무속전통이 살아있는 유연한 조선사회를 볼 수 있다니까.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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