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데서 험한 밤길 다니시는 순라군(巡邏軍) 달님, 세상 후미진 그늘마다 일어나는 사건-도둑질과 패싸움과 겁간- 다 놔두고, 복숭아밭 난데없는 박덩이 보며 웃는 모습이 밉지 않다. 털이 보송보송한 복숭아며, 박 덩이 같은 엉덩이며, 엉덩이 같은 달덩이며 한결같이 둥글둥글한 원만구족(圓滿具足)한 것들이다. 저를 닮은 둥근 것들을 내려다보며 달달달, 웃는 달의 자의식은 얼마나 억압 없고, 자유로운가? 너무 웃다가 덜커덕 아래턱이 빠져 당분간 웃을 수 없더라도 초승달 눈매만으로 가늘게 눈웃음치며 또 어느 과수원에 빠뜨린 과수댁의 박덩이를 훔쳐보러 다니시는가?
세상이 너무 무섭고 으슥하지 않고 꼭 달빛에 반사된 저 박덩이만큼만 환하고 관능적이었으면. 세상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여, 달빛에 하루쯤 모다 궁둥 까고 햇이엉 폭신한 지붕에 올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나 나누었으면. 찔레덤불, 탱자가시에 긁혀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고 둥실 떠오르는 참기름 바른 저 달.
달빛보다 문명의 빛이 더 밝은 도심, 어디 안심하고 박덩이 내놓을 밭두렁 하나 있는가 싶어 야속하다가도 정읍사 한 구절쯤이야 절로 나온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비구니 스님 과수원에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데를 드디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반칠환 시인
▼풍 경▼ 김춘추
달덩이같이뽀오얀비구니가
복숭아밭에서몰래소피를볼
때때마침지나가던둥근달이
털이보숭보숭한복숭아와박
덩이처럼잘익은엉덩이를보
고또보고웃다가기어이턱이
빠져목구멍목젖까지환하다
-시집 ‘영어로 읽는 한국의 좋은 시’
(문학사상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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