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버마 군사정권과 아웅산 수지'

  • 입력 2003년 8월 1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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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군사정권과 아웅산 수지(ビルマ軍事政權とアウン ス -チ­)

/다나베 히사오(田邊壽夫)·네모토 게(根本敬)/가도카와(角川)서점, 2003년

1991년 아웅산 수지 여사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그는 버마 정부에 연금돼 있는 상태였다. 그는 1995년에 일단 연금이 풀렸다가 2000년에 다시 연금되고 2002년 해금을 거쳐 올해 다시 세 번째로 연금돼 있다. 이 같은 조처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난을 샀지만 버마 정부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버마의 현 정부는 1988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이다. 그런데 1990년의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국민민주연맹(NLD)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자 군사정권은 선거 결과를 일절 인정하지 않고 NLD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버마의 현대사는 일본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웅산 수지의 부친인 아웅산은 영국 통치 아래 있던 버마 독립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버마의 독립을 위해 외국의 원조를 모색했지만 거의 모든 나라가 버마의 독립에 무관심했다. 그런데 단 한 나라, 일본만이 원조를 하겠다고 나섰다.

아웅산을 비롯한 ‘서른명의 지사(志士)들’은 가이난도(海南島)에서 일본군 비밀 기관으로부터 군사 훈련을 받은 뒤, 1942년 일본군과 함께 영국의 지배 아래 있던 버마를 공격하는데, 이 버마 독립의용군이 현재 버마 국군의 토대다. 그러나 얼마 후 버마의 독립운동은 ‘대동아공영권’의 확립을 추진하던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945년에 아웅산은 반일반란(反日反亂)의 봉기를 일으켜 일본군을 버마에서 추방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버마는 1948년에야 겨우 독립을 인정받게 되지만 아웅산은 독립을 눈앞에 둔 1947년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일본과의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네윈 장군이 국내의 반대 세력을 일소하고 ‘버마 사회주의’의 깃발 아래, 거의 쇄국에 가까운 상태에서 일당 독재를 시작했다. 네윈 장군의 군사 독재가 1988년까지 계속된 결과 버마는 동남아시아 최빈국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이 독재정권을 재빨리 승인한 것이 바로 일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정부개발원조(ODA)라는 형식으로 이 독재정권에 계속해서 경제원조를 했다. 그 금액은 버마가 외국에서 받는 원조의 80%에 달했다.

그후 버마는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규모의 ODA를 버마에 보내고 있다. 이런 일본의 ODA에 대해 아웅산 수지는 독재정권을 연명시키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버마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했던가를 통감하게 해 준다. 정부의 가혹한 탄압에 대해 비폭력의 저항을 계속하는 아웅산 수지는 단순히 반정부운동의 상징이 아니다. 이 책은 드물게 보는 용기와 깊은 사상을 겸비한 매력적 인물인 그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 준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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