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한 가운데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세 가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첫 번째 이야기 ‘가족’. 우스꽝스러운 가족이다. 가족사진을 찍고 함께 식사를 하는 모든 동작이 굼뜨고 어수룩하다. 관객들은 그들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다가 메시지를 발견한다. 험난한 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나는 아들을 보내고 싶지 않은 가족들의 마음!
두 번째 이야기 ‘냉면’. “맛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요/ 냉면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좋-다.” 한마디 대사도 없이 노래 한 곡에 맞춰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연기로 만들어내는 짧은 뮤지컬이다. 짤막한 노래 한 곡을 통해 한 사람의 왕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출하며 웃음과 긴장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진행된다.
세 번째 이야기 ‘추적’. 도시 변두리의 한 여관에서 벌어진 강도와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14명의 쫓고 쫓기는 추적이다. 6명의 배우가 정확한 타이밍으로 변신하며 14명의 역을 연기한다. 마지막 5분간 무대 뒤편의 커튼을 걷어내고 보여주는 배우들의 변신술에 관객들은 탄성을 지르고 만다.
‘가족’과 ‘냉면’이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유발한다면 ‘추적’은 상당부분의 긴장을 무대 뒤편 차단막 뒤로 가려 관객들이 좀 더 웃음에 깊이 빠져들도록 한다. 웃음과 긴장을 팽팽하게 가르는 포인트는 내면의 심경변화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훈련받은 ‘사회적 인간’들의 완강한 위장(僞裝) 욕망이다.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을 감추는 데 실패하는 배우의 동작과 표정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고, 곧 또다시 내면을 감추는 데 실패할 위기에 처한 배우를 보며 긴장을 한다. 웃음과 긴장은 이렇게 이어지고 쉴 틈 없이 터지는 객석의 웃음과 긴장은 정확히 계산된 무대의 연출에 따라 좌우된다.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의 연출가 임도완은 마임을 도입한 섬세한 몸의 움직임을 통해 이 웃음과 긴장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데 성공했고, 관객들은 기꺼이 이 즐거움에 빠져든다. 그저 가벼운 웃음만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적합하지 않지만, 이미 이 연극의 가치를 알고 찾아오는 많은 관객들을 위해 1일부터는 평일 낮 공연까지 마련돼 있다.
31일까지. 화∼일 오후 4시반 7시반. 대학로 소극장 축제. 8000∼1만5000원. 02-741-3934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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