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vs 디지털]나폴리 민요

  • 입력 2003년 8월 5일 17시 49분


‘나폴리를 보고 나서 죽어라(Vedi Napoli e poi muori).’

나폴리를 찾은 이들의 손에 들린 관광 가이드북마다 빠짐없이 쓰여 있는 말이다. 나폴리에 ‘자살바위’ 비슷한 것이라도 있다는 것은 아니다. 풍광이 뛰어난 나폴리를 보지 않은 채 생을 마치면 억울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곡예를 일삼는 운전사들, 뒷골목에 나부끼는 빨래,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아이의 궁둥이를 철썩철썩 두들기는 엄마들, 젊은 여성이 옆을 지날 때마다 주저 없이 눈을 찡긋거리는 사내들…. 이런 모습들은 어딘가 세련되지 못한 모습으로 나폴리를 기억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산등성이와 해변의 푸름 위에 가득히 쏟아지는 찬란한 햇빛만으로도 나폴리는 한번 들러볼 가치가 있다.


이 열정의 해안에 쏟아지는 노래는 ‘나폴리민요(Canzone Napoletana)’라는 독립된 장르를 만들었다. 우리 귀에 친숙한 ‘산타 루치아’ ‘오 솔레미오’ ‘후니쿨리 후니쿨라’ 등이 유명한 나폴리민요로 꼽힌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나폴리민요 음반은 두말할 것도 없이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앨범 ‘오 솔레미오’(데카)다. 그러나 귀 밝은 나폴리민요의 팬들은 이 음반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띤 파바로티의 목소리는 격정에 넘친 나폴리의 노래와는 결이 좀 다르다. 떠난 사랑을 질타하며 ‘죽음’ ‘피’ 등의 단어가 난무하는 나폴리민요만큼은 프랑코 코렐리, 마리오 델 모나코 등 60년대에 맹활약한 ‘격정파’ 테너의 노래가 제격이다. ‘서정파’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같은 시대에 활동한 지우제페 디 스테파노의 윤택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노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코렐리가 부른 ‘무정한 마음’ ‘네게 입 맞추리’ 등 나폴리민요는 EMI사에서 여러 가지로 편집된 다양한 앨범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음반은 성가곡 등과 함께 ‘2 for 1’(한 장 값에 두 장)으로 발매된 ‘코렐리-가곡과 아리아’ 앨범(사진)이다. 성대 근육을 완전히 열어 피를 토하듯, 불을 쏟아내듯 으르렁거리는 열창에는 여름의 햇살도 오히려 미지근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코렐리, 델 모나코, 스테파노 등 ‘60년대 3걸’에 비하면 디지털시대의 연주들은 대부분 빛이 바래고 만다. 알라냐가 동생들의 기타 반주로 부른 ‘세레나데’ 앨범(EMI·1997)이 그나마 언급할 수 있을 정도다. 과거의 명연들과 비슷한 스타일로 대결하기보다는 간소한 반주를 사용한 실내악적 분위기로 색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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