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는 이와 반대로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하다고 보았다. 이런 악한 본성을 타고 태어났지만 살아가면서 뭐가 착하고 뭐가 나쁜가 하는 것을 잘 살펴, 착한 일을 하도록 계속 노력하면 그 노력이 축적되어 습관이 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결국 우임금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중 어느 것이 옳을까? 동아시아 역사에서 순자의 성악설은 진시황제 때 잠깐 빛을 보았을 뿐 대부분의 경우 맹자의 설을 정설로 보았다. 우리는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최근 심층심리학 같은 데서는 인간의 본성이 단일하거나 균질하다고 보지 않는다. 인간의 심성에는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맹자는 인간성 중에서 밝은 면을, 순자는 그 중에서 어두운 면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이들이 왜 이런 주장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맹자나 순자가 공통적으로 바라던 것은 인간이 현재의 소인배적 상태에서 벗어나 군자나 성인의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었다. 단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
피아노 연습을 하는 아이를 보고 맹자는 너에게는 피아노 치는 데 소질이 있으니 그 소질을 꾸준히 계발하라고 이르고, 순자는 아이들이란 다 게으른 법이니 너도 정신 차리고 열심히 피아노를 치도록 하라고 하는 차이 같은 것.
물론 현대 교육은 맹자의 방법을 선호한다. 그런데 그것이 교육 분야에서만의 이야기일까? 종교에서는? 사회나 정치분야에서는? 너무 죄인이라 윽박지르거나 뭐든지 잘못한다고 나무라기만 하는 대신,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 속에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지금 종교나 사회, 정치계가 어떻게 달라질까.
최근에 나온 책으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이 있다. 하물며 인간에게 있어서랴.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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