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창]투신자살 예방센터 고려해볼 만

  • 입력 2003년 8월 17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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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뉴질랜드에서 높이 50m의 2인용 번지점프를 후배와 같이 처음으로 해본 적이 있다. 막상 뛰려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너무도 까마득하게 보여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그 순간 후배의 손에 밀려 떨어졌다. 정신이 반은 나간 상태에서도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후배의 옷을 끝까지 잡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요즘 들어 투신자살이 부쩍 늘고 있어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생명줄을 몸에 맨 채 뛰어내리려 해도 겁이 나는데….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한편으론 얼마나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졌으면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투신자살하는 사람 가운데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최근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876명이 투신자살했다. 이 중 남자가 512명으로 여자(364명)에 비해 1.4배나 많았다.

투신은 죽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자살을 결심했을 때 남자가 여성에 비해 좀더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는 말이 된다. 총기 사용이 자유로운 서양에서 총기를 이용한 자살의 경우 여성보다 남자가 훨씬 많은 것을 봐도 그렇다.

반면 여성은 주로 수면제 복용 등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이나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약을 구해야 하므로 사전에 충분히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투신과 총기 사용에 비하면 자살 성공률이 낮다.

전문가들은 여성은 실제로 자살을 하려고 하기보다 주위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미한 방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전 세계 자살률을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4배나 높다. 그러나 자살 기도율은 여자가 남자보다 4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교수는 “투신자살은 아무런 준비 없이 손쉽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최근의 자살 경향은 오랫동안 준비한다기보다는 즉흥적으로 결정되는 추세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투신자살은 한번 시도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불행한 방법이다.

자살은 예방이 가능하지만 단순히 친척이나 가족의 도움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 외국처럼 자살예방센터 등 사회적 제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사회가 불안하고 경기도 좋지 않아 최근의 잇따른 투신자살로 인해 청소년이나 경제적으로 힘들고 우울한 사람들 사이에 ‘모방 투신’이 번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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