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97…낙원으로(14)

  • 입력 2003년 8월 19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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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벌떡 일어났다. 군의관이 어깨를 밀치고 머리채를 감아쥐었지만, 그 팔을 깨물고 알몸인 채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검사가 아니야, 그걸 하려는 거야, 그걸, 싫어, 시집가기 전에 그걸 하면 나가 죽어야 한다고, 할매도 엄마도 늘 그랬는데, 싫어싫어! 소녀는 무성한 라일락 가지 속에 쭈그리고 앉아 자기 몸의 부드러운 부분을 등으로 가리듯 바짝 몸을 웅크렸다.

“여보하고 개는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단 말이야.”

들켰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걷어차이고 질질 끌리고 짓밟혀 기절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고야 정신을 되찾았다.

“성가시게 굴지마! 나도 너 같은 애를 안고 싶은 마음 없다고.”

얼굴에 숨이 느껴져 눈을 뜨자 눈앞에 커다란 손이 있었다…내 두 손을 합친 것만 한 큰 손이 휴지를 둘둘 말아 코와 입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다섯손가락을 볼 위에 펼치고 쓰다듬으며, 나머지 다섯손가락은 다리 사이에 펼치고…볼 위에 있는 손가락은 조심스러운데, 아래쪽 손가락은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나뭇가지로 휘젓는 것 같았다.

아얏! 엄마! 살려줘요! 아야! 소녀의 귀에는 온 건물로 메아리치는 자기 비명이 들리고, 소녀의 눈에는 말뚝을 내리박듯 움직이는 남자가 보였다.

“처음에는 아프지만, 금방 괜찮아져. 신품은 장교만 안을 수 있으니까, 한동안은 편할 거야. 그동안 영양분 많이 섭취해서 살 좀 찌워야지. 비쩍 말라서 멍석에 엎드려 있는 것 같았어. 은혜 갚을 기회가 주어진 셈이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병사들, 잘 받들어.”

끼이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소녀의 혼은 천장에서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어진 것이 아니라 찢어진 듯 보이는 입술…온몸 여기저기 나 있는 시뻘겋고 퍼런 멍…부자연스럽게 벌려져 있는 다리…피로 얼룩진 허벅지…소녀의 혼은 자기 몸에서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알전구에 부딪치는 조그만 갈색 나방을 보고 있었다. 눈을 감기가 무섭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는데, 지금 보고 있는 이 광경이 그대로라면, 정말 일어난 일이다…피 냄새…소녀는 겨우 겨우 혀를 떼고 입안에 고여 있는 피를 핥았다. 뭘로 몸을 가리고 싶다…하지만 이 몸을 만지고 싶지 않다, 온 피부에 그 남자의 지문이 찍혀 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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