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뒤인 크리스마스이브, 흥남항을 떠나는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만삭의 임부 다섯 명을 포함해 1만4000명의 한국인이 타고 있었다. 목적지는 해로로 724km 떨어진 부산. 10만여명의 북한지역 주민이 고향을 등지고 피란길에 오른 ‘흥남 철수’의 일부였다.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벌인 인도적 피란민 구조를 기록한 책 ‘기적의 배(원제·Ship of Miracles)’ 한국어판이 미국 출판 3년 만에 나왔다. 저자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를 지냈고 6·25전쟁에도 참전했던 빌 길버트. 저자는 당시 흥남지역 사령관 네드 앨몬드 장군의 보좌관이었던 알렉산더 헤이그 전 미 국무장관의 증언까지 들어 흥남 철수의 큰 그림을 보여준다.
군함도 아닌 화물선으로서 피란민 구조에 나섰던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60년 미국 의회 특별법으로 ‘용감한 배’ 표창을, 레너드 라루 선장(사진) 등을 비롯해 승무원들은 공훈장 등을 받았다. 종전 후 베네딕트 수도회에 입문해 신부가 된 라루 선장은 훗날 “어떻게 그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워 한 사람도 잃지 않을 수 있었는지, 하느님이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메시지를 느꼈다”고 말했다.
재미교포인 역자 안재철씨(뉴 밀레니엄 포스 파운데이션 회장, 미국 대통령자문위원)는 2001년 10월 타계한 라루 선장의 장례미사 참여를 계기로 책 번역에 나섰다. 안씨는 현재 라루 선장이 삶을 마친 미국 뉴저지주 뉴턴 수도원 내에 추모기념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책값 1만2240원은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흥남항을 떠났던 12월 24일을 기리는 것. 서울 지역의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에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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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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