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언스퀘어 역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전율이 느껴졌다. 끝없이 하늘로 튕겨져 오를 것만 같은 드럼소리가 정씨의 뇌리를 흔들어놓았던 것이다.
‘이래서 뉴욕이 좋아. 내 고향 한국에도 이런 문화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말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팀 언더 뉴욕’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에 가지 않을래?
팀 언더 뉴욕팀 언더 뉴욕은 이번 공연을 위해 재미 교포 7명으로 ‘급조’된 프로젝트 팀이다.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는 정씨를 중심으로 해서 건축설계사 유병안씨(32), 프리랜서 아트 디렉터인 김승환씨(32), 타임지 아트 디렉터인 박민희씨(29), EMI 레코드사의 컴퓨터 엔지니어 트루먼 조씨(29) 등이 주요 멤버들.
이들이 모이는 데 5개월이 걸렸다. 평소 사업관계로 알고 지내던 정씨와 유씨는 초기에 의기투합했고 이들의 친구, 친구의 친구, 사촌동생 등의 연결고리로 멤버를 끌어 모았다.
5월에야 ‘조직’이 정비돼 지하철 연주가들 섭외에 나섰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야외공연이 어울리는 여름이 가기 전, 그러니까 늦어도 8월에는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이 공연의 영감을 준 유니언스퀘어 역의 드럼 연주자 마크 니코시아를 제일 먼저 접촉했다. 몇 번이나 그 역을 찾아가 무작정 마크의 연주를 들어봤다.
‘이 음악이 한국적 정서에 맞을까. 공연했을 때 반응이 어떨까?’ 마침내 정씨는 마크에게 말을 걸었다. “나와 함께 지하철에서 공연하러 한국에 가지 않을래?”
반응은 흔쾌했다. “그러지 뭐.”
다른 연주자들과의 접촉도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 정씨와 유씨는 하루 종일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문이 열릴 때마다 음악소리가 나는지 문으로 귀를 갖다댔다.
이렇게 음악을 들어본 팀은 40여팀. 5월부터 지난달 말 한국으로 들어올 때까지 꼬박 석 달 동안 수백 개 역을 다녔다. ‘싸구려’ 음악이 아닌 고급스러우면서 자유로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추려냈다. 악기와 음악의 다양성을 생각해 5개 팀을 선별했다.
●시간이 묻어나는 장소
한국에 들어온 정씨와 유씨는 지하철역 헌팅부터 나섰다. 음악가들과 자신들의 숙식은 호텔 아미가에서 무료공연을 하면서 해결하기로 했다.
삼성역, 동대문운동장역 등은 무대장치와 음향시설이 잘 돼 있었지만 제외했다.
“되도록이면 뉴욕 지하철의 때 묻은 느낌, 녹슬어 있는 H빔 속에 시간이 녹아있는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역을 선택하고 싶었다.”(유씨)
이렇게 해서 선택된 곳이 시청역, 강남역, 을지로입구역이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환승역이나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곳들이다. 욕심 같아서는 더 많은 곳에서 공연을 하고 싶었지만 예산 때문에 포기했다. 협찬을 얻지 못해 공연 비용은 자비를 털어서 해결했다.
“뉴욕에 살아보니 한국에서 도시문화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도심에서 즐기는 문화는 대체로 관이 주도한 것이고 자발적인 문화는 ‘길거리 응원’ 정도밖에 없었다. 뉴욕의 도시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것이 미국과 한국을 잘 아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정씨의 말이다.
이들은 올 연말 한 번 더 뉴욕 음악가들을 이끌고 한국에 온다. 내년에는 ‘낙서’를 주제로 이벤트를 벌일 계획이다. 살아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뉴욕처럼, 서울도 시민이 사랑하는 도시가 됐으면 하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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