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비 오네
자꾸 비 오면
꽃들은 우째 숨쉬노
젖은 눈 말리지 못해
퉁퉁 부어오른 잎
자꾸 천둥 번개 치면
새들은 우째 날겠노
노점 무 당근 팔던 자리
흥건히 고인 흙탕물
몸 간지러운 햇빛
우째 기지개 펴겠노
공차기하던 아이들 숨고
골대만 꿋꿋이 선 운동장
바람은 저 빗줄기 뚫고
우째 먼길 가겠노
-시집 ‘그림자 호수’(창작과 비평사) 중
세상만사 걱정도 가지가지 돈 많은 사람 돈 많은 대로, 가난한 사람 가난한 대로, 하늘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걱정부터 복에 겨운 팔자치레 푸념에 이르기까지 애인 품보다 걱정 품에 사는 사람이 많기도 많은 모양이지만 저 ‘우짜노’를 들으니 세상이 환해지는 건 우짠 일인가?
빗방울 속에 꽃잎이 숨쉴 걱정, 천둥 번개 속에 새들이 날 걱정, 무 당근 팔던 노점 할머니 생계 걱정, 공차기하던 아이들 뛰어놀 걱정, 심지어 무생물인 바람 길마저 걱정인 저 오지랖에 눈이 맑아지는 건 웬일인가?
우산 장수는 짚신 장수 굶거나 말거나, 짚신 장수는 우산 장수 굶거나 말거나, 모두들 제 집, 제 주머니, 제 통장, 제 자식 걱정할 때 저렇게 바보 같은, 아니 성현 같은 ‘우짜노’가 있다니?
나는 세상사람 모두가 저런 ‘우짜노’를 연발했으면 좋겠다. 창문 밖 장맛비를 내다보며 정치인이, 군인이, 장사꾼이, 도둑놈이, 시인이 모두 손을 놓고 꽃잎 걱정, 풀잎에 매달려 빗방울 뭇매를 맞을 왕아치, 풀무치, 때까사리, 소금쟁이 걱정을 하다가 제가 정치인인지 사기꾼인지 도둑놈인지 시인인지 몰라 잠시 멍청해지는 그런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덕분에 전쟁광이 좀 손해보고, 무기상이 셈하다 갸우뚱하고, 도둑놈 장물 수입이 줄고, 히히- 시인은 시 한 편 더 건지는 그런 시간이 많이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지루한 장마 속에 과일은 떨어지고, 야채는 녹아 겨우 인물 갖춘 것들이 금싸라기란다. 여느 해 보다 빠른 귀성길이 코앞에 닥쳐왔는데 저렇게 장대비 오면 올 추석 제물은 ‘우짜노’?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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