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생각에는]전업주부가 부럽다고요?

  • 입력 2003년 8월 26일 16시 47분


지난 금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가 볼멘소리로 하는 말.

“엄마도 병준이 엄마처럼 직장에 다니면 좋겠어요. 걘 지금 마음대로 게임하는데….”

친정올케가 맞벌이를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는 사촌동생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아이들은 늘 그게 부러웠던가 보다.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두 사내 녀석은 옆에서 잔소리만 해대는 엄마가 부담스러운 눈치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시간에 쫓기는 취업주부들은 아침시간에 느긋하게 목욕가방 챙겨들고 사우나 가는 여자들이 제일 부럽다나. 하지만 하루 종일 해도 해도 표 안 나는 집안일에 시달리고, 아이들 단속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는 전업주부들은 일하는 엄마들이 부럽기만 하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엄마는 그야말로 만능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서울 강남의 고학력 주부들이 초등학생 자녀들의 매니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전업주부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엄마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느라 학원수업시간 내내 학원밖에서 기다리는 정도라니 나 같은 보통 엄마들은 기가 죽는다.

그 많은 준비물에 과제물, 독후감, 영어공부, 음악레슨까지 모두 사교육에 맡길 수도 없고, 또 맡긴다 해도 엄마가 꼼꼼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

하루에 한두 시간씩은 꼭 공을 차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아이들은 피아노학원을 다녀 온 나머지 시간을 집에서 영어공부와 학교 숙제, 책읽기로 보내는데 그러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틈틈이 게임도 해야 하니까 말이다.

주말에 실컷 게임을 하게도 해보지만 해도 해도 하고 싶은가 보다. 할 일을 얼른 해놓고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하라고 타이르지만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엄마는 늘 악역을 맡는다.

일하는 엄마들이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에 아이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아이들을 지켜보는 나 같은 전업주부들보다 아이들에게 덜 집착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이들도 옆에 엄마가 늘 있기 때문에 더 의지하려는 것처럼도 보인다.

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내가 하는 일이 가끔은 지겨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일이 소중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을 차는 우리 아이들과 친구들을 위해 오늘도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을 채워 넣는다.

정혜경 서울 강동구 고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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