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매일 수많은 숫자들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마주하며 살고 있다. 그 숫자들은 일과 사물의 ‘순서’를 나타내기도 하고 개인과 조직의 ‘능력’을 대신하기도 하며 때로는 복합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정보’가 되기도 한다.
‘오늘 비 올 확률’이나 ‘상반기 경제 성장률’, ‘이번 주 로또 당첨 확률’, 또는 ‘추석 귀향차량의 분포’ 등과 같이 정보가 되는 숫자는 대부분 ‘통계’라는 과정을 통해 전해진다. 통계는 일반인들에게 생경한 부분이지만 통계를 통해 나타난 숫자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천재들의 주사위’는 통계에 관한 이론과 발전 과정, 그리고 다양한 실례들을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풀어내고 있다. 피어슨과 고셋을 비롯한 통계학자들의 이론을 그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과 함께 설명하고 통계학의 발전 저변에 깔려 있는 세계관의 변화까지 알기 쉽게 제시하고 있다.
결정론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던 19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고 만물은 신에 의해 ‘이미’ 결정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신 중심의 결정론적 ‘궁극 원인’을 거부하고 사회의 현상 속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현실을 관찰하고 끊임없이 분석한 통계학자들의 노력은 이후 물리학 화학 생물학 그리고 첨단과학의 전 분야에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이 책에 소개된 통계학자들의 기나긴 노력의 여정과 에피소드는 무미건조하고 추상적인, 그래서 개인의 일상과 동떨어진 숫자가 아니라 인간사 희로애락의 응결체로서의 숫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통계학의 선구자인 골턴이 주장한 ‘평균으로의 회귀’가 한 예이다. 아버지의 키가 클 때 유전적 영향으로 자식의 키도 크게 된다면 몇 세대만 내려가더라도 인류는 한쪽 극단에 키가 무척 큰 사람들과 다른 극단에 키가 무척 작은 사람들로 양분될 것이다. 하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평균으로의 회귀’ 때문에 그러한 현상은 벌어지지 않는다.
통계가 가치중립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치적인 의도에서든 아니면 분석능력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든,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의도적인 왜곡과 편의적 해석의 가능성은 통계가 존재하는 한 상존한다. 스탈린의 독재 속에서 통계학은 당의 중앙 계획에 봉사하는 도구로 러시아를 피폐시키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왜곡과 편의에 대한 우려 때문에 통계에 대해 무시와 불신을 나타내는 것보다는, 숫자가 드러내는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고 우리의 일상에서 유용한 정보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그것은 개개인의 삶 속에서 ‘남는 장사’로 이어질 것이다. 이 책은 ‘남는 장사’로 나아가는, 그리고 닫힌 사고의 장벽을 열어 줄 수 있는 훌륭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배 영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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