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다모' 계기로 본 조선조 범죄수사 허와 실

  • 입력 2003년 9월 7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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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조선 여형사 다모(茶母)’가 인기를 끌면서 조선시대 범죄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은비녀나 닭을 이용해 독살 여부를 확인하고 고초라는 물질을 뿌려 핏자국을 찾는 등 요즘 못지 않은 과학수사기법이 동원됐다. 특히 살인사건의 경우 ‘신주무원록’이나 ‘증수무원록언해’에 따라 시체를 과학적으로 조사했다. 신주무원록은 15세기 세종 때 원나라 왕여의 ‘무원록’을 기초로 간행됐고, 증수무원록언해는 18세기 영조 때 신주무원록을 토대로 다시 쓴 것이다. 이 두 책은 당시의 법의학 지침서였다.》

신주무원록에는 살해 후 즉시 시체의 목을 매 자살한 것처럼 조작하는 경우 이를 어떻게 판별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목을 맨 장소가 스스로 목을 맬 수 있는 높이인지, 목을 매단 기둥 위에 흔적이 있는지, 목을 맨 끈의 상태가 어떤지를 살펴야 한다. 끈이 팽팽하면 자살인 반면, 끈이 느슨하면 타살이다.

신주무원록은 또한 독살이 의심되는 경우 은비녀를 목구멍에 넣어 검게 변하는지 확인하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흔히 쓰던 ‘비상’이라는 독약은 비소와 황의 화합물인데, 은은 비상의 황과 결합하면 검게 변한다.

독살을 확인하는 데 동물 실험도 했다. 흰쌀밥 한 덩이를 죽은 사람의 입 속 깊숙이 집어넣고 종이로 덮어 한두 시간 지난 후, 밥을 꺼내 닭에게 먹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닭이 죽으면 독살이라는 뜻이다.

또 증수무원록언해에서는 살인에 쓴 칼이 오래돼 핏자국을 찾기 어렵거든 숯불에 달군 후 고초(高醋)라는 강한 식초를 뿌리면 핏자국이 드러난다고 한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오래된 피에 남아있던 철이온은 소량이라도 티오시안산과 반응하면 붉은색이 드러난다”며 “고초에는 티오시안산이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방울도 채 안되는 혈흔을 탐지할 수 있는 현대의 루미놀 기법에 못지 않는 과학수사기법인 셈이다.

현대의 루미놀 기법에서는 루미놀에 과산화수소수를 혼합한 용액을 사용한다. 혈흔을 찾고자 하는 곳에 이 혼합액을 뿌리면 과산화수소수가 혈흔의 혈색소와 만나 산소가 떨어져 나가고 이 산소가 루미놀을 산화시킴으로써 파란 형광빛을 낸다. 범죄 현장이 실내인 경우 어둡게 한 후 루미놀 기법을 쓰면 아무리 작은 혈흔이라도 루미놀을 만나 반딧불처럼 빛난다.

신주무원록에는 칼로 찔러 죽인 후 시체를 불에 태워버린 경우에도 고초를 이용한 수사 방법이 소개돼 있다. 시체가 놓여 있던 땅을 깨끗이 치운 다음에 고초를 뿌려보면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신주무원록의 기록에는 틀린 부분도 있다. 젖은 종이에 질식사한 경우 시체의 배가 부어오른다는 내용은 드라마 ‘다모’에서도 인용되는데 사실이 아니다.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질식사의 경우 혈액이 고여 내부 장기가 부을 수 있지만 시체의 배가 부어오를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시체를 해부하지 않고 시체의 겉모습만 살폈던 조선시대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다.

증수무원록언해의 기록에는 터무니없이 틀린 내용도 있다. 친형제가 어려서 헤어졌다가 나중에 만났을 때 친형제임을 확인하려면 각각 피를 뽑아 한 그릇에 떨어뜨려 응고되면 친형제라는 것이다. 이는 혈청과 혈액의 응고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경우이다.

한편 드라마 ‘다모’에는 신주무원록을 잘못 적용한 장면이 나온다. 한 양반 댁에서 여자 변시체가 발견되자 주인공 다모는 시체를 검사하면서 핏자국을 찾기 위해 조협수를 사용한다.

최근 신주무원록을 번역한 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김호 박사는 “조협수는 핏자국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저분한 시체를 깨끗이 닦기 위해 쓰던 액체”라고 말했다. 또 조협수는 악취를 제거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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