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유안진, '구미호'

  • 입력 2003년 9월 7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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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서럽사리 사노라 사랑하노라, 천 년을 묵

어도 아니 풀릴 원한으로,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

호라도 되어, 꽃피는 서낭고개 타고 앉아 캉캉 울

었으면, 서리치는 밤하늘을 피칠하며 새웠으면.

-시집 '봄비 한 주머니'(창작과 비평사)중에서

어렵사리 서럽사리 찾노라 찾아가노라, 천년을 앙갚음 당해도 아니 풀릴 죄값으로,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를 찾아, 방방곡곡 꽃 지는 서낭고개 상여집마다 찾아다녔니라. 씻어도 씻어도 아니 지는 죄값으로 길고 흰 목덜미 네게 내어 뜨거운 피를 빨리고 싶었니라.

자고로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오욕칠정(五慾七情)이 사람 살아가게 하는 힘인즉, 해탈(解脫)은 미뤄두고 아아, 저 뜨거운 캉캉 구미호를 만나 천 년 사랑을 누렸으면. 하룻밤 만리장성으로 구미호 원한 아주 풀리겐 말고 조금씩 새로운 죄를 더해 두 천 년 피 칠갑한 밤하늘을 보았으면.

달 없는 밤마다 거미줄 친 비각(碑閣)에서 구미호를 안다가 꼬리 아홉 달린 아이들 구 남매쯤 두었으면. 얼크러설크러진 세상, 해원(解寃)은 미뤄두고 알콩달콩 재미난 죄(罪)나 듬뿍 지었으면.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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