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허문명/어둠 만지는 전시회 '본다는 것' 무엇인가

  • 입력 2003년 9월 7일 18시 38분


장막 안으로 들어가니, 어둠의 세상이다.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허리께에 느껴지는 플라스틱 줄을 따라가며 앞서 가는 시각장애인의 말소리를 좇아 두 팔을 내미니, 조각 작품들이 늘어서 있음을 느끼게 된다. 돌, 철재, 나무, 스테인리스, 파라핀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 10여개를 더듬고 만지다 갑자기 온통 새 소리와 솔향기 가득한 공간으로 들어선다. 마치 숲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100m쯤 걸었을까, 이번엔 갑자기 환하게 불이 켜진다. 발밑의 센서가 작동한 것이다. 어둠에 익숙해 있던 동공은 갑자기 축소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통 벽이 새하얗다. 마치 무중력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기분이다.

무중력 방을 나오면 다시 어둠이다. 이번에 경험하는 어둠은 앞의 것보다 더 캄캄하다. 몇 발짝 걸어 나가니 갑자기 얼굴에 부드러운 천들이 닿는다. 나중에 확인하니 이 천은 그저 실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은 하찮은 천 조각에조차 공포를 갖게 했다.

시각을 잃어 버렸다는 위기는 이렇게 모든 것을 두렵게 만들었다. 새삼, ‘본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미술관에서 5일 개막한 ‘너 어디에 있는가?’전은 어둠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미술전이다. 한 줄기 빛도 새어 들어 오지 않는 전시공간에서 관람객들은 보는 대신 만지고 냄새 맡고 피부로 느끼며 미술작품들을 감상한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비장애인들은 시각장애인들의 안내를 받는 전복(顚覆)된 경험을 하면서 문득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미술작품은 온전히 시각으로만 감상할 수 있다는 선입견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이번 전시는 미술의 근본적 역할에 대한 성찰과 우리가 갖고 있는 감각과 생각이 얼마나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던 것인지를 확인하게 해 준다. 13일까지. 02-760-4602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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