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언론상대 무차별 소송 제한”

  • 입력 2003년 9월 14일 18시 41분


한나라당이 권력기관이나 고위 공직자, 대기업 등이 반대의견을 억제하기 위해 언론이나 시민을 상대로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을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한나라당 인권위원회는 지난달 말 워크숍을 열고 ‘반 전략적 봉쇄소송(Anti-SLAPP)’ 입법에 대한 심도 깊은 토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달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의원과 동아일보 등 4개 언론사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이달 초 노 대통령의 전 후원회장인 이기명(李基明)씨가 김 의원과 3개 언론사에 대해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데 대한 대응책인 셈이다.

한나라당 심양섭(沈良燮) 부대변인은 14일 논평을 통해 “대통령과 그 측근 인사들이 언론과 야당 의원을 상대로 무차별 거액 소송을 잇달아 제기함에 따라 앞으로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며 이 법안의 입법 필요성을 밝혔다.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표현의 자유와 시민 참여를 봉쇄하는 무차별 거액 소송을 조기에 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이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를 넘는 의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의원입법을 통해 ‘반 전략적 봉쇄소송’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미국에선 현재 캘리포니아 오클라호마 로드아일랜드 등 20개 주가 ‘반 전략적 봉쇄소송’ 법을 시행 중이다. 이들 주에서는 정부와 대기업, 공인이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명백한 악의를 갖고 비판했다는 증거가 없을 경우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돼 있다.

언론법을 전공한 단국대 법대 문재완(文在完)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의 장(場)에서 논의돼야 할 정치인의 자질, 정부의 기능 등 공적인 이슈가 명예훼손 소송을 통해 법정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민주주의에 따른 공적인 토론을 막는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어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비리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일단 거액의 소송부터 제기하는 것을 막는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박용상(朴容相)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은 지난해 8월 ‘철우언론법상’ 수상 기념세미나 주제발표에서 “고위관료 등이 부정확한 보도를 빌미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명예회복을 넘어 언론을 위축시켜 보도를 억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며 “최근 고위 관료와 정치인 등이 고액 소송을 통해 언론의 위축과 강압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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