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하기 전 20년 동안의 직업이 돼지 키우고 농사짓는 농사꾼이었는데 이보다 더 근사한 직함이 어디 있겠어요. 나고 자란 동네에서 이웃과 살 붙이고 사니 세상 부러울 게 없어요.”
1961년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자진 근로반’이라는 농촌봉사 서클 활동을 시작하면서 출세나 고시보다는 농민운동에 마음을 빼앗겼다. 78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과수원을 시작했고 젖소 키우기에 이어 돼지 키우기를 본업으로 삼았다.
명문대를 나온 젊은이가 고향에서 돼지 치는 모습에 한심스럽다는 시선도 받았지만 그에게는 고향과 농촌이 잘 사는 방법을 찾는 게 삶의 목표였다.
그러나 92년 도의원으로 공직에 발을 디딘 그에게는 큰 시련이 다가왔다. 민선 1기 군수로 당선된 이듬해인 96년 연천군 전지역이 홍수 피해를 본 데 이어 2기 군수에 당선된 직후인 99년에도 수해를 겪은 것이다.
“접경지역으로 인구 5만여명인 연천군의 당시 1년 예산은 450억원에 불과해 수방시설 확충은 꿈도 꾸지 못했죠. 나흘간 1000mm가 넘게 쏟아진 비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 같은 상황이 중앙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됐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죠.”
그 뒤 수방시설 확충을 위해 3600억원을 지원받아 둑을 쌓고 배수펌프장을 신설해 ‘수해 상습지역’의 오명을 씻게 됐다.
96년 수해 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했고 2001년 한해(旱害)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찾아와 직접 수행하면서 두 사람의 개성을 엿볼 기회도 있었다. “YS는 이재민을 많이 위로해 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제 가족 사항을 묻는 등 정이 많다는 느낌이었죠. DJ는 구체적인 가뭄 대비책과 피해 작물별 지원 방안 등 미리 준비한 듯한 구체적인 12가지 질문을 쏟아내 꼼꼼하고 치밀한 성품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군수 시절보다 요즘이 훨씬 마음 편하다고 말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임기간 부족한 활동비 때문에 진 빚 1억여원을 돼지 가격 폭락으로 갚을 길이 막막해진 것.
다른 축산농가들의 고통도 심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 걱정은 더욱 커진다.
최근 멕시코 칸쿤에서 들려온 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의 자살 소식도 그렇지만 요즘 농심은 ‘희망거리’를 찾지 못해 허우적대는 듯하다. “농업 발전 방안을 만드는 데에 여생을 보낼 생각”이라는 그도 불안정한 판로와 생활 여건 악화로 농촌을 떠나는 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걱정한다.
“현 정부가 농업 자체를 살리기보다 휴경 논에 대한 보상책을 실시하는 등 농민의 근로 의욕을 꺾고 있어요. 국가적으로 안정적인 농산물 판로를 만들어 농민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교육 문화 교통 등의 여건도 함께 갖춰야 이농을 막고 농업도 활성화할 수 있지요.”
연천=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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