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전세금 털어 세계여행 양학용-김향미 부부

  • 입력 2003년 9월 14일 18시 51분


전 재산을 쏟아 부을 세계 여행을 앞두고 각지의 관련 자료를 모아 공부 중이라는 양학용 김향미 부부. -곽민영기자
전 재산을 쏟아 부을 세계 여행을 앞두고 각지의 관련 자료를 모아 공부 중이라는 양학용 김향미 부부. -곽민영기자
“우리 여행가야지?” “좋아.”

“방 빼서 가야지?” “그래야지.” 전 재산인 전세금을 털어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나선 ‘철없는’ 부부가 있다. 노동운동가 양학용(梁鶴龍·34) 김향미(金香美·35)씨다. 김씨는 2001년과 2002년 서울 구로을과 금천 국회의원 재선거에 사회당 후보로 출마해 각각 3위, 5위를 기록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들은 10월부터 1년 반 동안 세계 일주에 나선다. 중국 칭따오(靑島)에서 시작해 아시아 유럽 미국 아프리카 등 4개주(洲) 60개국을 도는 방대한 여정이다.

“결혼 3주년 때 배낭여행을 가자고 약속한 것이 벌써 10년이 지났어요. 더 많은 일을 벌여 늦어버리기 전에 과감하게 결단한 거죠.”(김씨) “10년 동안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여기서 한 단락 쉬면서 앞으로의 10년을 계획하기로 한 겁니다.”(양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기투합한 부부는 각자 민주노총(양씨)과 사회당(김씨)에 사표와 휴직계를 내고 재산을 정리했다. 결혼자금에 1000만원이 조금 넘는 두 사람의 연봉을 10년 동안 모은 게 전세금 4000만원이다. 아직 아이가 없어 결단이 쉬웠다고 이들은 말한다.

‘부럽다’ ‘용감하다’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양가 부모들의 걱정은 상당했다.

“갔다 와서 어디서 어떻게 살 거냐고 하시더라고요. ‘집도 절도 없는’ 무일푼 신세가 되겠지만 아직 젊은데 등 기댈 곳 하나 못 구하겠어요.”(김씨)

“내가 이뤄낸 것을 내가 가진다고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비워야만 더 얻을 수 있고, 그래서 채워지면 또 그만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양씨) 요즘 울산의 양씨 본가에서 여행계획을 짜고 있는 이들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한 뒤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로 여행 일기를 틈틈이 올릴 예정이다. 기회가 닿으면 이를 모아서 책으로도 내고 싶다고 한다.

‘여행’을 정의해 달라고 했더니 양씨는 ‘사람과 삶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땅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에서 내 삶을 돌아보면 어디에선가 나아지고 넓어진 스스로를 만나게 될 것 같아요.”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