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아버지 정명훈에게 다가올 미래 어느 날의 한 장면이다.
최근 요리 에세이 ‘디너 포 8’를 통해 음악뿐만 아니라 요리에서도 대가의 면모를 보여준 마에스트로 정명훈. e메일 인터뷰와 책을 통해 그의 요리와 주방을 살짝 엿봤다.
●8인용 식탁 차리는게 꿈
그에게 요리는 ‘행사’라거나 ‘일’인 적이 없었다. 10세부터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요리는 음악공부가 전부였던 젊은 시절에도 그에게는 일상이나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지난해 프랑스 프로방스의 전원에 집을 마련한 이후 연주여행을 떠날 때가 아니면 아내는 텃밭을 가꾸고 그는 하루 종일 요리를 한다.
그러나 그의 ‘요리 인생’은 아직까지 미완이다. 세 아들의 반려자가 함께 하는 8인용 식탁을 완벽하게 차려내야 그의 삶은 완성된다고 스스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느 날 기대하던 8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맛있는 저녁을 한 끼 한다면 어떤 요리를 준비하겠습니까.
“전날 고기국물과 불린 콩을 준비한 뒤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장을 봅니다. 싱싱한 생선과 해물을 사는 거죠. 횟감이 좋으면 맛보기로 좀 장만하고 굴이 싱싱하면 껍데기째 한 상자 사옵니다.
메뉴는 브루스케타(①), 칙피수프(②), 생선회 및 해물, 해물 샐러드와 고기찜, 파스타, 돌솥밥과 김치찌개 및 생선구이입니다. 브루스케타를 만들 때는 신선한 토마토와 싱싱한 마늘, 갓 짠 올리브기름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죠. 파스타는 아이들과 제가 좋아해서 빠뜨릴 수 없는 요리예요. 게를 살 수 있으면 게소스 스파게티(③)를 만들고, 아니면 그날 물이 좋은 생선과 해물을 이용해 스파게티를 만듭니다. 저는 매운 맛을 좋아하지만 취향에 따라 먹도록 고추기름은 따로 준비해야겠지요.
식사를 마친 뒤 올리브기름과 소금 또는 앤초비로만 버무린 야채 샐러드와 치즈를 먹으며 커피나 차로 입가심하고 과일을 먹으면 행복한 한 끼의 식사가 될 것 같습니다. 샐러드에 들어갈 야채는 당연히 우리 집 텃밭에서 갓 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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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재료 배합을"
―며느리들이 배웠으면 하는 요리가 있습니까.
“며느리들에게 그런 내색을 하라고요? 하하. ‘꼭 이것만은’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성의껏 만든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굳이 고르라면 칙피스프레드(④)와 칙피수프같이 콩을 이용한 것입니다. 특히 칙피스프레드는 빵 위주의 식사에 균형을 맞춰줄 뿐만 아니라 맛이 담백하고 구수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답니다.
이탈리아식 생선찜(⑤)도 좋을 것 같네요. 토마토 소스를 이용한 것인데 이 소스는 오징어 볶음에도 고추장과 함께 넣으면 좋은 맛이 납니다.”
―하루에 한 끼는 반드시 한국식 요리를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하루의 메뉴는 어떤 식으로 정하나요.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나는 것을 준비하고,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 때 먹을 메뉴를 아내와 함께 정합니다. 저녁도 마찬가지로 정하죠. 보통은 아침에 밥을 먹었으면 점심은 파스타로, 저녁은 생선이나 고기 요리를 한 뒤 밥이 남아 있으면 찌개를 끓여 함께 먹죠.”
―요리를 맛나게 하는 한 가지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좋은 재료를 선택하고 이를 조화롭게 배합해야 합니다. 제가 일곱 살 때 미국 시애틀로 이민을 가서 한식당을 열었던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죠. ‘똑같은 재료라도 언제 얼마만큼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요.”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①브루스케타
▽재료=바게트 빵 1개, 마늘 2쪽, 올리브기름 2큰술, 토마토 토핑(토마토 1개, 올리브기름 1큰술, 소금 적당량, 바질잎 적당량)
▽만들기=1cm 두께로 비스듬하게 썬 바게트 빵을 190℃의 오븐에서 노릇하게 5, 6분 굽는다. 빵에 마늘을 고루 문질러 바른 뒤 올리브기름을 뿌리고 2분 정도 더 굽는다. 토마토는 꼭지를 떼고 열십자로 칼집을 넣어 끓는 물에 담갔다 꺼내 껍질을 벗긴다. 껍질 벗긴 토마토는 씨를 뺀 뒤 작은 네모 크기로 다지듯 썬다. 토마토, 바질잎, 올리브기름, 소금을 볼에 넣고 고루 섞어 토마토 토핑을 만든 뒤 먹기 직전 바게트 빵에 얹어낸다.
②칙피수프
▽재료=칙피(또는 작두콩) 100g, 베이킹소다 2분의 1작은술, 새우(대하) 300g, 마늘 1쪽, 로즈메리 1줄기, 소금 1과 4분의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기름 약간
▽만들기=칙피는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하룻밤 담가둔다. 불린 칙피를 냄비에 넣고 로즈메리, 마늘을 넣은 뒤 물을 넉넉하게 부어 끓인다. 펄펄 끓으면 약한 불에 1시간 정도 삶는다. 로즈메리와 마늘은 건져내고 믹서에 칙피 삶은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곱게 갈아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다. 새우는 찜통에 찐 뒤 꼬리만 남기고 껍데기를 벗긴다. 수프 볼에 칙피를 담고, 새우를 올린 다음 올리브기름을 슬쩍 뿌려 낸다.
③게소스 스파게티
▽재료=스파게티 200g, 소금 20g, 꽃게 3마리, 올리브기름 2큰술, 마늘 8쪽, 새우(대하) 10마리, 생선국물 2컵, 물 1컵, 화이트와인 4분의 3컵, 토마토 6개, 소금 1과 2분의 1작은술
▽만들기=프라이팬에 올리브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볶다가 게를 넣고 뚜껑을 덮어 익힌다. 등딱지와 다리를 떼고 몸통은 먹기 좋게 자른다. 새우는 찜통에 찐 뒤 머리와 껍데기를 제거한 뒤 게의 등딱지, 다리와 함께 팬에 넣어 화이트와인을 붓고 끓인다. 여기에 생선국물과 물을 붓고 게와 새우 몸통, 다진 토마토를 넣는다. 한소끔 끓으면 약한 불에 40분 정도 끓인다. 게 등딱지 등은 건져내고 소금 간을 한 뒤 삶은 스파게티를 넣고 1분 정도 끓이면서 고루 섞어낸다.
④칙피스프레드
▽재료=칙피(또는 작두콩) 1컵, 베이킹소다 2분의 1작은술, 다진 마늘 8분의 1작은술, 레몬즙 1작은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기름 6, 7큰술, 소금 4분의 3작은술
▽만들기=물에 충분히 불린 칙피를 냄비에 담고 물을 넉넉히 부어 끓인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약한 불로 줄여 50분 정도 더 삶는다. 칙피를 체에 받쳐 물기를 충분히 뺀 뒤 믹서에 넣고 알갱이가 없도록 곱게 간다. 볼에 칙피를 담고 다진 마늘, 레몬즙, 올리브기름, 소금을 순서대로 넣은 뒤 고루 섞는다. 호밀 빵과 함께 낸다.
⑤이탈리아식 생선찜
▽재료=흰살생선 3마리, 올리브기름 2큰술, 마늘 4쪽, 마른 고추 8개, 다진 양파 2컵, 토마토 소스 1과 2분의 1컵, 토마토 2개, 생선국물 3컵, 로즈메리 1줄기, 월계수잎 1장, 바질 2줄기, 앤초비 3마리, 소금 3작은술
▽만들기=냄비에 올리브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마른 고추를 향이 나도록 볶다가 양파를 넣어 볶는다. 양파가 투명해지면 다진 토마토와 토마토 소스를 넣고 생선국물과 물 2분의 1컵을 부은 뒤 로즈메리, 월계수잎, 바질을 넣어 끓인다. 재료가 한소끔 끓어오르면 손질한 생선을 넣고 중간 불에서 20∼25분 동안 끓인다. 생선이 충분히 익고 소스와 맛이 어우러지면 다진 앤초비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정명훈은 주방에 들어서면 즐겨 쓰는 양념들을 우선 챙긴다. 요리에 이것저것 많이 넣어 맛을 내는 것을 싫어하는 터라 자주 쓰는 것이 정해져 있다.
샐러드도 신선한 채소의 맛을 살리기 위해 올리브기름과 소금, 앤초비를 소스 대신 넣는다. 양념도 대부분 직접 만든다.
●정명훈의 기본 양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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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기름은 그의 찬장에 들어있는 제1 품목이다. 거의 모든 요리에 넣는다. 그의 프로방스 집에는 올리브나무가 400여 그루 있는데 여기서 딴 올리브를 짜서 기름을 만든다. 기름병에는 ‘Myung Whun Chung’이라는 라벨이 달려 있다.
맵고 약간 간간한 것을 좋아하는 그는 고추기름과 앤초비가 요리의 필수품이다.
고추기름에 들어가는 고추는 작고 붉은 이탈리아 고추나 한국의 태양초를 쓴다. 고추 씨에서 매운맛이 많이 우러나므로 고추를 반으로 갈라 씨를 받아 둔다. 보통 고추와 올리브기름을 1 대 1 로 맞춰서 만든다.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뚜껑을 닫아두고 매운맛을 우려내 쓰면 된다.
앤초비는 한국의 멸치젓과 비슷하다. 이탈리아산으로 멸치류 생선의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뒤 소금을 뿌려 오크통에 넣고 발효시킨 것. 올리브기름이나 물에 절여두면 된다. 샐러드나 파스타 등에 소금 대신 잘게 썰어 넣으면 간도 맞고 감칠맛이 난다.
신선한 맛과 향을 내기 위해 통후추를 즐겨 쓴다. 보통 매운 맛이 강한 검은 후추는 고기요리에, 향이 은은한 흰후추는 생선요리에 쓰지만 정명훈은 많은 종류의 후추를 한데 모아 두고 모든 요리에 조금씩 사용한다.
먹다 남은 레드와인은 와인식초로 사용한다. 밀폐용기에 담아 발효시키면 단맛이 적고 뒷맛이 깔끔한 식초가 된다. 샐러드에 넣거나 올리브기름에 떨어뜨려 빵에 찍어먹어도 근사하다. 와인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은 따라해 보면 좋을 듯.
그는 자신이 직접 기른 채소도 양념으로 쓴다. 밭에서 따온 고추는 이탈리아나 한식요리를 가리지 않고 넣는다. 마늘은 통째 볶아 향을 내 요리에 활용한다. 바질, 근대, 파슬리 등을 향신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의 냉장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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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은 성격이 급하다. 요리하 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냉장고 냉동실에 늘 들어 있는 게 국물이다. 7세부터 외국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통 아저씨’처럼 국물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한다.
요리하다 고기가 남으면 야채와 함께 푹 끓이고, 생선도 살 때부터 살은 뜨고 뼈는 따로 챙겨와 푹 고아놓는다. 기름은 걷어내고 한 번 먹을 분량씩 덜어서 냉동 보관한다. 파스타를 즐기는 그는 수시로 토마토 소스도 만들어둔다.
쇠고기 국물은 요리할 때 물 대신 넣으면 깊은 맛이 난다. 깔끔한 맛을 낼 때는 양지머리를 준비하고 진하고 깊은 맛이 필요하면 사골이나 도가니를 함께 넣어 끓인다.
돼지고기 국물은 김치찌개처럼 얼큰하고 투박한 맛을 내는 국물요리에 어울린다. 리조토나 스파게티 소스 등을 만들 때도 좋다.
닭고기 국물은 칼국수 수제비 전골 등에 넣으면 담백하고 감칠맛이 난다. 누린내의 원인이 되는 닭껍질과 기름덩어리, 핏물을 깔끔하게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생선 국물은 해산물을 이용한 파스타 요리에 넣으면 진한 소스맛이 우러난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마늘 파 양파 무 통후추 등을 듬뿍 넣는다.
각종 수프에는 야채 국물이 좋다. 향이 강하지 않은 야채를 선택해 무, 양파, 당근, 호박 등 냉장고에 들어 있는 자투리 재료를 채썰어 넣는다. 중간불에 서서히 끓이는 게 포인트.
토마토 소스는 올리브기름에 다진 마늘을 볶다가 마른 고추를 넣어 매운맛을 낸다.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잘게 썰어 넣고 바질, 파슬리를 넣어 끓인 뒤 국물이 자작자작 졸아들면 바질, 파슬리를 꺼낸다. 이탈리아의 모든 요리에 쓰이는 소스로 집마다 맛이 다르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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