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은 있어야겠다
사정없이 후려치는
바람에게 뺨 맞고
쓰러져
기댈 수 있는
막막함 있어야겠다
-시집 '겨울 별사'(책만드는집)중에서
기댈 곳이 따로 있지 절벽에 기대는가? 아무도 가려 않는 두려운 절벽, ‘우리 앞을 가로막는 절벽은 있어야겠다’니 저게 무슨 신소리인가? 헌데 저 절벽은 좀 이상하다. 아득한 높이와 추락을 감추고 있는 무시무시한 나락(奈落)이 아니라 든든한 의지처(依支處)이다.
주뼛주뼛 내려다보는 절벽이 아니라, 두릿두릿 밑에서 올려다 본 절벽이어서 그런가? 그 역시 한 발 내디딜 수 없는 막다른 궁지(窮地)이긴 마찬가지이건만 저 이는 또 말한다. ‘쓰러져 기댈 수 있는 막막함’은 있어야겠다고.
절벽이 이상한 게 아니다. 절벽은 절벽일 뿐. 다만 막막함을 의지처로 만드는 저이에 의해 절벽은 더 이상 절망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저이가 기댈 어깨를 내어준다. 자기 생의 가장 ‘막막함’마저 기댈 언덕으로 만드는 이에게 어떤 장애가 있겠는가. 절벽과 벼랑이 따로 있으랴. 절벽과 벼랑에 떠는 자기 자신이 벼랑이다.
유난히 아파트 절벽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많은 요즈음이다. 수십 년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들이 자꾸만 눈에 떠오른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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