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英 판타지문학포럼 "전통에 대한 갈증이 판타지문학 낳아"

  • 입력 2003년 9월 18일 20시 10분


판타지 문학의 전통과 새로운 상상력에 대해 대담하는 김성곤(왼쪽), 브라이언 로즈버리 교수. 김 교수가 “홍길동전과 박씨부인전 등 조선시대 한국문학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고 소개하자 로즈버리 교수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권주훈기자
판타지 문학의 전통과 새로운 상상력에 대해 대담하는 김성곤(왼쪽), 브라이언 로즈버리 교수. 김 교수가 “홍길동전과 박씨부인전 등 조선시대 한국문학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고 소개하자 로즈버리 교수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권주훈기자
《12월 중순 ‘반지의 제왕’ 제3편이 개봉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판타지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는 가운데 판타지 문학에 관한 국제학술회의가 서울에서 열려 주목을 끈다. 19일 오전 10시 반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포럼 ‘판타지, 환상성 혹은 새로운 상상력’(대산문화재단, 주한 영국문화원, 문학과영상학회 공동주최). 이 회의에서는 판타지소설 ‘둠스펠’ 시리즈의 작가인 영국의 클리프 맥니시, ‘드래곤 라자’를 쓴 한국의 이영도 등 양국 판타지 작가와 학자 9명이 ‘판타지를 보는 시선들’ ‘한영 판타지문학의 만남’ 등에 대해 논의한다. 포럼에 참가하는 J R R 톨킨(‘반지의 제왕’ 작가) 전문연구자인 브라이언 로즈버리 교수(영국 센트럴 랭커셔대 문화학과 과장)와 김성곤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현대영미소설학회 회장)의 대담을 통해 판타지문학이 21세기 문화 창작에서 갖는 의미를 짚어보았다.》

▽김 교수=남아프리카 출신 영국작가인 톨킨,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 등 대부분의 중요한 판타지 작가들이 영국의 문화전통 안에서 출현했다. 영국문학의 어떤 전통이 이런 현상을 낳게 했을까.

▽로즈버리 교수=사실은 민간전통의 계승보다는 ‘전통의 부족’에서 판타지문학이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12세기 프랑스군의 침입으로 그때까지의 잉글랜드 고대 전승문학이 파괴됐고, 17세기 이후에는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또 한 번 전통의 상실이 일어났다. 20세기 톨킨 같은 작가들 사이에서 ‘과연 잉글랜드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것이 판타지문학의 탄생으로 귀결됐다고 할 수 있다.

▽김=판타지의 궁극적 목표는 현실의 반영일까, 아니면 현실로부터의 탈주일까.

▽로즈버리=판타지는 대안을 상상하고 제시한다. 판타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연결시켜서 보여주는데, 이는 현실세계의 반영이면서 느슨하게 현실과 연결된다고 하겠다. 톨킨은 만년에 제2차 세계대전과 동서냉전을 목격했는데, 이런 현실은 그의 작품에서 서로간의 차이를 내버리고 동맹하는 여러 세력들의 연합으로 상징된다.

▽김=톨킨의 문학에서는 유럽적인 특색 외에도 인류 보편적인 면을 다양하게 찾아낼 수 있다. 한국의 젊은 판타지 작가들도 톨킨적인 세계인식에 한국적 소재와 정신세계를 접목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로즈버리=톨킨의 작품이 문화적 차이를 넘어 보편성을 갖는 이유는, 그가 자국문화의 특징을 모호하게나마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동쪽에 광활한 대지가 펼쳐진다는 설정은 광활한 유라시아, 나아가 동양을 의식한 것이다. 각 나라의 작가들이 모국어와 문화적 배경을 근거로 판타지문학을 하는 것이 이 장르의 보편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김=당신은 이번 세미나에서 ‘영화로 보는 톨킨’을 발표한다. ‘반지의 제왕’의 경우 영화가 성실히 원작을 반영했다고 보는가.

▽로즈버리=영화화된 ‘반지의 제왕’은 비교적 소설이 가진 상상력을 충실히 살려냈지만 잃어버린 부분도 있다. 소설에서 강조된 ‘도덕성’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김=영화의 흥행성이 문학에 위협이 된다는 견해가 있는 한편 ‘상호 보완적’이란 낙관도 있는데….

▽로즈버리=19세기 초에 발표된 메리 셸리의 판타지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경우 이 작품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가 원작과 너무 달랐고 관객들도 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등 판타지 문학을 토대로 한 영화들은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고, 수용자 역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비교하고 있다. 이 바람직한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정리=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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