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신현준의 월드뮤직 속으로'

  • 입력 2003년 9월 19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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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의 월드뮤직 속으로/신현준 지음/309쪽 1만5000원 웅진닷컴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반도 곳곳에서 세네갈과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의 국기가 나부꼈다. 눈에 익숙지 않은 국기들만 현란하게 나부낀 것이 아니다. 월드컵 전야제에 참석했던 세네갈의 국민가수 이스마엘 로는 한국인 관객들로 가득 찬 서울 대학로의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포르투갈의 가요 ‘파두’를 아는 사람들은 자국 선수들 앞에서 국가를 부르기 위해 고국에서 날아온 파두가수 마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지구촌에는 마돈나도, 마이클 잭슨도,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에미넴까지도 지배하지 못하는 독자적인 노래의 영토가 있다. 한국인에게도 이 새 영토는 이제 전혀 낯설지만은 않다.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언더그라운드’를 본 사람들은 기타와 브라스밴드가 기묘하게 교직되며 집시 선율과 록을 오가는 고란 브레고비치 음악의 잔향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쿠바의 재즈밴드 ‘브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노래와 공연은 신경숙 같은 한국 작가들에게 상상력의 한 원천이 됐다. 올 9월 내한공연을 할 예정이던 아르헨티나 민속음악의 디바, 메르세데스 소사가 와병으로 한국땅을 밟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팬들의 깊은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던 헝가리에 18세기 유럽 문화가 유입되면서 '집시 오케스트라'라는 현악 앙상블이 생겨났다.사진제공 웅진닷컴

이 책의 저자는 ‘음악산업의 지구화와 국지화’를 주제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인터넷 공간에서 대중음악평론가로 활약하는 사회과학자. 이제 막 우리 앞에 ‘월드뮤직(world music)’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음악의 신대륙을 꼼꼼한 여행가이드처럼 구석구석 안내한다.

먼저 ‘월드뮤직’의 정의는? 서구사회에서의 학술적 정의로는 △영미 팝 음악과 다르고 △팝이나 록의 국지적 변종이 아니며 △인위적으로 보존된 전통음악도 아니어야 하며 △포크 블루스 컨트리 등도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이 아니다’ 유의 월드뮤직 이데올로기로 골머리를 앓기보다는 어떻게 특정지역의 삶과 정조(情操)와 역사와 문화가 고유한 노랫가락으로 빚어졌는지를 답사하는 데 열중한다.

예컨대 여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를 통해 세계화한 포르투갈의 노래 파두를 얘기할 때는 ‘사우다데’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 파두의 어원은 ‘운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툼(fatum)’이며 사우다데(saudade)는 ‘진정하고 강렬한 갈망’이라는 뜻이다. 파두의 ‘운명’은 저항이 아니라 수용이다. 파두의 주된 가사인 배신당한 사랑, 죽음과 절망을 모두 받아들이는 정서, 갈망을 머금은 포용이 곧 사우다데다.

파두는 순혈주의 음악이 아니다. 포르투갈 땅으로 흘러 들어온 앙골라 모잠비크 등의 흑인 민속음악과 포르투갈의 시적 전통, 브라질에서 수입된 발라드가 뒤섞여 길 위에서 탄생한 음악이다.

이 책은 이렇게 음악에 깃든 그 사회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며 아일랜드의 켈틱 음악, 헝가리의 집시음악, 안달루시아의 플라멩코와 자메이카의 레게, 브라질의 삼바 등 대서양 이쪽저쪽의 음악세계 열 두 곳을 탐방한다. 200여개의 월드뮤직 대표음반 소개, 음악가별 음악장르별로 수록된 색인 등이 있어 ‘월드뮤직’ 입문자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로 손색이 없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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