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이번 ‘100인 성명’은 한국 연극을 이끌어가고 있는 연극인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차범석 예술원 회장을 비롯해 연출가인 권오일 강유정 정진수 윤호진 손진책씨, 평론가 서연호 이태주씨, 배우인 권성덕 박정자 유인촌씨 등 원로와 중진들까지 두루 성명에 동참한 것. 차 예술원 회장은 “오늘 모인 것은 우리가 살아남자는 소승적 차원이 아니라 전체 문화예술계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100인 성명’이란 상징성을 나타내기 위해 연장자 순으로 100명만 채웠을 뿐 뜻을 같이한 젊은 연극인들은 훨씬 더 많다”고 밝혔다.
사실 연극인들이 하나로 결집해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 1981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선언 이후 연극인들이 항의성명을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단 3차례의 공식 성명 발표가 있었을 뿐이다.
이번 성명 발표는 많은 연극인들이 ‘정치권력을 이용해 예술계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얼마나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셈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문예진흥원 영상자료원 국립국악원 국립현대미술관 등 정부 산하 주요 문화단체 기관장들은 진보계열 인사들이 차지했고, 이에 대한 기존 문화예술계의 거부감은 커져 갔다.
특히 정부가 예술지원기구인 문예진흥원을 민간 주도의 ‘문화예술위원회’ 체제로 바꾸겠다고 밝힌 것은 연극인들의 단합에 기폭제가 됐다. 연극계에서는 정부안대로 될 경우 참여 위원(11명)의 성향에 따라 특정 세력이 지원금을 독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한편 이번 성명과 관련해 정남준 민예총 사무총장은 “최근의 인사는 민예총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체장 개인의 역량이 인사에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문화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성명서에 나온 연극인들의 요구사항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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