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불쑥 찾아온 '통증'…인체 경고 사이렌

  • 입력 2003년 9월 21일 17시 25분


《토요일 아침에 ‘뻑’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가 아파왔다. 그러지 않아도 수시로 허리와 등이 아팠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주5일 근무제 시행 직장에 다녀 출근하지 않았지만 맞벌이인 아내는 무심하게도 출근해 버렸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버렸다. 낮이 가까워지자 숨쉬기가 힘들었다. 누운 채로 숨을 쉴 때마다 온몸이 결려왔고 속옷은 땀범벅이 됐다. 공포가 밀려왔다. 몇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던 중 ‘철커덕’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학교를 다녀왔다. “빨리…, 윽…,음, 119를….” 그러나 앰뷸런스를 타고 찾은 병원 응급실 의사는 심각한 병이 아니라고 했다. 화가 났지만 병원에서 조금 쉬니까 움직일 만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거리 곳곳에 있는 ‘통증클리닉’이라는 간판이 유난히 눈에 크게 들어왔다. “저곳은 어떤 곳일까.” 중견기업체 박모 차장(41)의 최근 경험담이다.》

최근 통증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통증클리닉이 급증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통증만을 관리하는 ‘통증의학’은 환자는 물론 의사들에게도 생소한 영역이어서 ‘제3의 의학’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통증클리닉이 이곳저곳 생기기 시작했고 현재 800여 곳에 이르고 있다.

통증은 인체의 위험을 알리는 경고이지만 위험이 사라졌는데도 통증이 지속되면 통증클리닉에서 별도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이전엔 주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통증클리닉을 열었지만 재활의학과, 신경과, 가정의학과 등 다른 과에서도 잇달아 개원하고 있다.

▽통증의 메커니즘=통증은 인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 상황을 경고하는 비상벨과 같다. 외부 자극이 일정한 세기(문턱값)를 넘어 몸에 해로울 성싶으면 통각신경이 흥분돼 아픈 것이다. 순간적으로 아픈 ‘급성 통증기’를 지났는데도 계속 비상벨이 울리면 ‘만성 통증’에 해당한다. 또 경보가 울리게 된 원인을 제거했는데도 계속 벨이 울리면 ‘신경병증 통증’이다.

급성 통증은 원인을 제거하면 해소되지만, 만성이나 신경병증 통증은 통증 자체를 다스려야 한다.

통증은 보통 악순환한다. 통증이 생기면 뇌가 통증 부위의 운동신경과 교감신경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통증 부위의 신경이 흥분되고 근육과 혈관이 수축되며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가 잘 통하지 않고 노폐물이 쌓이면서 통증은 더욱 심해진다. 따라서 조기에 치료할수록 치료 효과가 좋다.

▽마취과 의사의 통증클리닉=현재 800여 곳의 통증클리닉 중 300여 곳은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운영하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의 통증클리닉에서는 통증이 가벼우면 통증을 유발하는 부위에 약물을 넣어 가라앉히고 통증이 심하면 아주 가는 바늘을 통해 신경이 갈라지는 신경마디 부위에 약물을 주입한다. 더 심하면 신경을 아예 죽이는 약물을 주입한다.

신경병증 통증의 경우 열로 신경을 지지는 ‘고주파 열 차단 치료’ 등을 한다. 본래 간질약으로 개발됐으나 요즘에는 자극에 대한 이상반응을 억제하는 가바펜틴 등 약물을 복용케 하는 등의 방법으로 통증을 다스린다.

▽다른 과의 통증클리닉=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최경호 교수는 “재활의학과에서는 통증클리닉이라는 말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통증을 다뤄왔다”며 마취의학과가 통증클리닉의 원조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서울 클리닉9의 권도윤 원장은 “마취과에서는 통증 자체에 집중하고 신경외과나 정형외과에서는 수술 위주로 치료하지만 재활의학과에서는 통증의 근원에 주목해 약물요법, 물리치료 등으로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강화해 통증을 없앤다”고 설명했다.

한편 신경과에서는 두통 요통 신경통 등의 통증을 주로 다루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고성범 교수는 “신경과는 중추신경계 내의 여러 병들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신경병증 통증을 잘 이해하며 진통제, 이온차단제, 신경전달물질 억제제 또는 흥분제, 항우울제 등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들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고 소개했다.

▽통증클리닉을 이용하려면=물리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치료에는 재활의학과가 낫고 빨리 효과를 보고 싶으면 마취의학과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약을 복용해 두통을 치료하고 싶으면 신경과를 이용하는 것이 방법이다.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윤덕미 교수는 “한 가지 치료법보다는 다양한 치료법을 갖고 있는 의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며 “통증의 원인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꼼꼼히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 유리하며 이런 면에서 너무 북적대는 곳은 좋지않다”고 말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등급으로 본 통증輕重 ▼

통증에도 정도가 있다. 통증의 왕은 3차 신경통. 얼굴을 대패로 밀거나 드라이버로 후비는 듯이 아프다고 한다. 환자의 통증 경험을 수치화한 통증 등급지침(PRI)에 따르면 마흔 살이 넘은 초산모의 분만통보다 더 아프다고 한다.

▶그래픽 참조

일반인이 잘 모르는 통증도 있다.

사고로 팔다리나 손가락, 발가락 등을 잃었어도 사라진 신체 부위에 아픈 느낌이 드는 것을 환상통, 유령통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대뇌가 완성되지 않은 어린이에게는 이 통증이 없다. 교감신경파괴술을 받으면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통증을 느끼는 최저점인 문턱값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통각 이상이라고 한다. 문턱값이 지나치게 낮으면 화상 부위를 살짝 건드리는 시늉만 해도 아픈 통각과민이 된다. 반면 문턱값이 너무 높으면 전쟁 중 총에 맞고도 이를 모르는 무통각 또는 통각 감소가 된다. 운동선수가 경기 중 다쳐도 아픈 줄 모르고 죽어라고 뛰는 것이 대표적 무통각이다.

인체의 손상 부위와 멀리 떨어진 곳이 아픈 연관통은 다른 병의 신호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간암이 전이되는 등의 이유로 가슴과 배를 구분 짓는 가로막에 이상이 생기면 어깨가 아프며 맹장염 때에는 다리가 조이며 아프다. 협심증 환자는 가슴뼈 부위와 왼팔 안쪽 부분에 통증이 오는 경우가 많다.

▼"환자모습 보면 통증이 보여요" ▼

통증클리닉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의 모습만 보면 어떤 통증으로 고생하는지 대략 알 수 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 환자는 다른 사람과 스칠까봐 조심조심 들어온다. 약간만 스쳐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성 환자는 대체로 우울증에 잘 걸리기 때문에 얼굴빛이 어둡다.

통증의 왕으로 불리는 ‘3차 신경통’ 환자는 겁먹은 표정이다. 환자는 뇌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심한 통증을 경험한다. 감전되거나 송곳에 찔려 긁히는 듯한 통증을 얼굴에서 느낀다. 선풍기 바람 등 작은 자극에도 통증이 오기 때문에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있는지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신경파괴술로 치료하는데 고난도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베스트닥터인 아주대병원 김찬 교수에게 즉시 보낸다.

요통 환자 중에는 한쪽 엉덩이가 올라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치 임신부처럼 두 손을 허리에 받치고 오는 경우가 있다. 신발끈을 매거나, 스타킹을 신다가, 심지어 냉장고 문을 열다가 삐끗해서 오는 경우도 있다. 디스크가 아닌 경우 신경이완치료를 하면 즉시 통증이 없어진다.

두통 환자 중에는 머리카락이 눌린 사람이 있는데 통증을 참지 못해 머리띠를 둘렀던 자국이다.

오십견(五十肩) 환자는 어깨를 못 움직이므로 머리를 빗거나 제대로 씻을 수가 없어 몰골이 말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환자 모두가 통증 치료로 금세 낫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치료를 받고 표정이 바뀌는 환자를 보면 의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더러 효과가 즉각 나타나므로 스테로이드주사를 놓은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환자도 있지만 요즘 통증클리닉에서는 이런 약을 쓰지 않는다.

최봉춘 박사·세연통증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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