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시작하면 큰아이 얼굴은 ‘또 시작이다’하는 표정이다. 듣기 싫어도 하는 수 없다. 그때는 집에 돈도 귀했고, 용돈은 더더욱 귀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이렇듯 푼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큰아이는 물론이고, 동네가게서 군것질거리 사는데 맛 들린 다섯 살 막내도 100원 동전 정도는 무시한다.
우리 엄마들 어린 시절에는 명절날이나 되어야 푸짐한 용돈을 만져볼 수 있었다. 그때도 기껏 받은 명절 용돈 대부분을 항상 생활비가 달리는 엄마에게 ‘상납’해야 했지만, 그래도 자투리는 남아 커다란 왕사탕이나 생고무 느낌의 쫄쫄이과자 같은 것을 사먹을 수 있었다.
명절이 아닌데 큰 용돈을 받았다면 그날은 아버지가 술 드신 날이었다. 느지막한 저녁 한잔을 걸친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이 집에 오셔서 ‘2차’를 하시며 술심부름 값으로 주시는 용돈을 받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 친구분 앞에서는 한사코 받지 말라 말려놓고는 부엌으로 날 살짝 불러들여 좀 큰돈이다 싶으면 그 돈을 갖고 가시며 대신 동전 몇 개를 쥐어주셨다. 밑지는 협상이다.
이제 엄마가 된 나도 아이들 명절용돈을 ‘회수’하지만 아이 몫으로 따로 모으는 것이 옛날 엄마와는 다르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그냥 “내놓아”는 안 통한다. “이거 모아서 나중에 너 필요한 거 사라” 이 정도 돼야 마지못해 내놓는다.
푼돈이 우스우니 큰돈 쓰는 것도 무덤덤이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주위의 아이 친구들 상당수가 휴대전화를 입학선물로 받았다. 우리 큰아이는 디지털카메라를 받았는데 이런 선물들이 어디 한두 푼짜리인가.
남들 다 갖고 있는 거 안 챙겨주면 혹시 왕따라도 당할까하는 마음에 엄마들은 다른 지출 줄여가며 고가의 물건들을 사주지만, 정작 아이들은 그때뿐이다. 이웃 엄마도 아이 중학교 입학기념으로 휴대전화, MP3플레이어를 사줬지만, MP3 플레이어는 안 쓰고 던져놓은 지 벌써 몇 달이다.
이렇게 돈 무서운지 모르고 자라서 그런지 주위에서는 대학생 신용불량자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우리 이웃집도 대학생 딸이 현금서비스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인 것을 딸의 우편물을 통해 발견하고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남 일 같지 않다. 자녀가 커 가면 ‘자는 자식도 다시 본다’고 했는데, 우리 세대 엄마들은 자는 자식뿐 아니라 e메일이며 휴대전화 요금 고지서며 다시 볼 게 너무 많다.
박경아 서울 강동구 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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